무의식적 편견이 낙인을 만드는 과정
국내 정신건강 비영리단체 멘탈헬스코리아의 부대표님과 와인 한 잔 하며 가족 얘기가 나왔던 일입니다. 서울대 입학할 때까지 어머니와 갈등 한 점 없다가, 20대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가족이 바라지 않아 온갖 감정의 격투를 치러내야 했던 저의 성장 배경을 부대표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가만히 조용조용 해 주시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모든 어머니의 간섭과 불안은 딸의 안전을 걱정하는 데서 나온다고. 나를 미치게 하는 온갖 싫은 소리들은, 딸의 안위에 문제가 생길까 우려하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학창 시절에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공무원이 되거나 전문직, 고위직에 올라 안정적인 경제적 배경을 갖추고, 좋은 집안과 배경을 갖춘 사람과 결혼도 하고 꾸준히 모은 돈으로 집도 마련해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삶. 저희 아버지는 이러한 인생을 살아 오셨으며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를 도와서 집안 자산이 꾸준히 성장하고 저와 동생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 집안일을 든든히 맡아 오셨습니다. 부모님께서 살아오신 삶의 여정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속 한 번 안썩인 딸이 서울대에 들어갔으니 비슷한 경로를 걸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게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공부를 잘 해야 편한 인생을 살고,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의당 좋은 대학에 가서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자리에서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의식에 뿌리깊게 박혀 있어 언뜻 봐선 편견이란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청년의 삶이 어떠해야 바람직하다는 성장상(狀)에 대한 엄연한 고정관념입니다. 청년기의 성장 경로는 수없이 많은 선택지가 가능하며, 부모와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해당 경로가 성공과 행복으로 100%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편향은 무의식적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본능
심리학자 조지프 레독스는 편향(bias)에 대해 무의식적 위험 탐지기라고 정의했습니다. 여러 외부 환경이 생명에 위협을 되던 원시 시절부터 사람은 자신과 가족, 자신이 속한 집단 성원들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무엇이 나에게 독이고 아닌지, 누가 내 편이고 적인지를 빠르게 판단해야 했습니다. 법률과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재 우리의 생명과 기본적인 욕구에 위협이 되는 외부 요소들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사회가 고도화되며 하루 중에 우리가 맞닥뜨리고 대처해야 하는 상황과 자극들은 오히려 더 늘어났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세상 속, 내가 연관을 맺는 사람과 대상을 신속히 평가하고 이에 반응하고자 합니다.
머신 러닝의 기본적인 원칙은 어린 아이가 명제를 습득하는 과정을 기계에게 탑재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유년기부터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보며, 특정 대상의 속성을 유추하거나 자극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있어 틀림이 없다고 여겨지는 원칙들을 수립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고정관념 또한 생겨납니다. 성별, 인종, 연령, 취미, 성적 지향성, 정치색 등 특정 속성을 지닌 사람은 다른 데 있어서도 어떠할 것이다라는 가치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판단은 자기 나름대로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게 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관념을 타인의 결정에도 판단 근거로 차용하고자 한단 점입니다. 단순히 타인에게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여 감정적 성취를 얻기 위한 경우도 있지만, 해당 타인이 자신에게 소중하고 지키고 싶은 존재인 경우도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나 가까운 친척이 그렇습니다. 유년 시절에 무엇을 가까이 하고 멀리해야 할지, 어떤 사람을 사귀면 이로운지, 그 나이가 되었으면 뭘 걱정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난제들에 대해 자신이 오랫동안 보고 겪어서 검증되었다고 보는 진실을 전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