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돌보미 선생님

by 키다리쌤

첫째가 7살일 때 그리고 둘째가 15개월일 때 쌍둥이가 태어났다. 처음 쌍둥이를 데리고 집에 온 날 둘째는 '이렇게 귀여운 것들은 뭐지'하는 마음으로 두 번째 손가락만 펴서 아기들은 조심스레 만져보는 것이었다. 자기가 오빠가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겠지 그러나 쌍둥이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처럼 둘째는 아기들을 지키는 오빠가 되었었다. 본인도 아장아장 걷는 아기인데 젖병을 손에 쥐어주면 (첫째가 한 명 맡아 먹이고) 둘째가 아기 젖병을 물려 먹이고는 했다. 둘째도 말 못 하는 아기였음에도 아기가 아기를 키우는 그런 때였다.


그러나 어린 아기들을 셋(둘째-15개월, 신생아 쌍둥이)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당시 쓴 일기에도 캄캄한 동굴을 통과하는 듯하다는 글을 남겨 놓았었다. 밤새 세명의 아기들이 번갈아 울어 달래며 잠을 자면 아침에 일어나도 잔 것 같지 않은 누군가에게 실컷 얻어맞은 듯한 멍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과 상의 끝에 돌보미 선생님을 구해서 함께 집에서 아기들을 돌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돌보미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돌보미 선생님은 8시간 우리 집으로 출퇴근하시며 쌍둥이 자매를 돌봐 주셨다. 오전에는 아기 셋을 데리고 동네 산책도 나가고 병원에도 함께 가고 점심도 같이 먹었다. 낮에 둘째와 함께 잠을 잘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고 쌍둥이 자매들을 참 예뻐하면서 키워 주셨다. 놀랍게도 아직도 선생님이 찍어 주신 쌍둥이 사진을 볼 때면 아기들을 얼마나 예뻐해 주셨는지 사진에서 느껴진다. 사진기는 기계인데 그 안에 찍힌 사진도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애정을 갖고 찍은 사진 속의 주인공은 더 사랑스러워 보이니 말이다.


돌보미 선생님의 도움을 참 많이도 받았다. 하루는 밤새 울어대는 아기들 때문에 잠을 잘 못 자 자느라 첫째를 학교에 못 보낸 적이 있었다. 오전 9시에 오셔서 오후 5시에 퇴근하시는 시스템이었는데 그 이후에는 오전 8시에 오셔서 첫째 등교를 도와주셨다. 그리고 점심에 몇 가지 반찬 없이 대충 밥을 먹는 나를 위해서 자신의 반찬을 넉넉히 해오셔서 맛있는 반찬을 나눠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늘 아기 셋 육아의 힘든 길을 한걸음 더 걸어 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아기 셋 키우는 것이 힘들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때로는 언니처럼 다독여 주시고 때로는 친구처럼 말동무가 되어 주시고 때로는 선생님처럼 아기들 키우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셨다. 특히 선생님은 아기 이유식을 만들 때 믹서기에 버섯과 당근, 청경채 등등 다양한 야채에 고기까지 삶아 넣고 갈아 맛있는 아기 음식을 해 주셨는데 덕분에 아직도 삼둥이들은 특별히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 먹는다.


(일 년 동안 돌보미 선생님과 아기들을 함께 키웠고 이사로 인해 돌보미 선생님과 아쉬운 이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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