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기
첫째가 2학년 때 아이가 학교에만 가면 전화가 왔다. 아이가 배탈이 단단히 난 거 같다며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보라고 하셔서 병원에 가보면 배가 원인이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그때서야 아이의 스트레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주도적으로 왕따를 시키는 반 아이로 인해 형성된 왕따문화, 돌아가면서 왕따가 되던 아이들 가운데 우리 아이 차례가 되고 오랜 시간 몇개월에 걸쳐 작은 학교에서 왕따가 되었던 시기! 꼭 하얀 장갑을 끼고 청소를 하시던 중년의 남자 선생님! 쉬는 시간에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던 그 해! 우리 아이는 학교에만 가면 배가 아파서 집으로 돌아왔다.
반복되는 복통 호소에
결국 상담실을 찾아가 상담을 받게 되었다.
10년간의 교직 생활로 많은 아이들을 만나며 아이들에게 관해서는 그리고 학교에 관해서는 전문가라고 자부해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아는 것이 정말 맞나? 내가 우리 아이 잘 키우고 있나? 의심을 하게 되었다. 상담실에서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보시고 착한 아이들에게 많이 찾아오는 스트레스의 유형으로 무의식 자아가 실제 아이 몸을 괴롭혀 꾀병이 아니라 고통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이를 정말 잘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부모님 상담을 먼저 해야 한다고… 그렇게 들어간 상담실에서 나는 나를 마주 보게 되었다. 네 아이를 키운다고 쌍둥이 동생들이 어리다고 아이가 집에 들어올 때마다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던 엄마, 아이의 말을 들어주기보다는 우리 집 교육 방침이라며 컴퓨터 게임과 TV 없이 지낼 것을 강요하던 엄마, 아이의 할 것을 했는지 물어보았지 아이가 잘 지내는지 무심했던 엄마인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반성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차라리 문제의 원인이 나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고치는 것은 어렵지만 나만 바뀌면 해결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바뀔 마음이 있었다.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아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30분씩 같이 해나갔다. 평소 하고 싶었는데 엄마한테 말도 못 꺼냈던 컴퓨터 게임도 시켜주고 반 친구 전부 초대해서 짜장면도 먹이고 친구 집에서 잠옷 파티도 다녀오게 하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이의 복통은 여전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학교에서 복통을 호소하다가 집에 데리고 오면 안 아프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집에서도 아픈 것이 아니라 집에만 오면 괜찮아진다고 하니 집에 오는 것 자체가 치료제인 셈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다고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아이를 바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엄마랑 같이 있는 것이 안정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 해 첫째 아이는 느슨하게 학교를 다녔다. 교회 여전도회에서 산으로 놀러 가면 체험학습 내고 첫째 아이를 데리고 같이 갔다. "왜 학교를 안 보내고 데리고 왔어?" 많이들 물으셨지만 마냥 웃으며 "함께 가고 싶어서요."대답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아이가 아팠던 것이 차츰 나아졌던 것 같다. 결석으로 난도질된 출석부임에도 아이가 2학년을 무사히 끝마친 것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내 아이가 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학교에 가방 메고 오는 아이들이 모두 기특하다는 것!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아야 할 아이들이란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