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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기쁨 Oct 30. 2022

아르메니아로 가는 길

조지아에 한 달 씩이나 있다 보니, 버스나 기차로 갔다 올 수 있는 옆 나라, 아르메니아에 다녀오기로 했다. 같이 여행하는 친구 H가 몇 번을 말했다. 조지아에서 아르메니아로 넘어가는 길이 그렇게 예쁘다나 뭐라나. 한화 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지만, 그 길은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작은 봉고차 안에서 지대 자체가 산이 많은 지형이라 산을 넘어 넘어가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멀미가 평소에도 심했던 나는 잠시 고민을 했지만, 가는 길이 그렇게 예쁘다고 하니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아르메니아로 향하는 버스로 올라탔다. 


버스에 오르기 전, 영어가 안 통하는 나라에서 손짓 발짓 써가며 멀미가 심하다고 기사 아저씨에게 어필을 해보았다. 내 노력이 아저씨에게 닿았는지 다행히도 차 앞 조수석에 앉을 수 있었다. (역시 바디랭귀지는 세계 공통어다) 차가 출발 후 1 시간이 채 안되었을 때,  익숙하지 않은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냉전시대의 산물이 많이 남아있던 트빌리시와 다른 초원에 풀어놓은 양 때와 염소 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기도 잠시, 푸릇푸릇했던 색은 잿빛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곧 장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망했다.”


옆 자리에 앉은 H가 뱉은 말이다. 아르메니아로 넘어가는 길이 그렇게 예쁘다고 했는데, 빗방울이 굵은 탓에 앞을 보기조차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나 또 한 속으로 아주 잠깐 욕을 했다. 고개를 돌려 H를 봤다. 서로 눈이 마주쳤고, 살짝 정적이 흘렀다. 그리곤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분명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즐거웠다. 


아르메니아로 향하는 차 안에서 비는 잠시 멈출 기세를 보였다가 다시 격렬히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십 여분이 흘렀을까. 빗줄기는 가늘어지기 시작했고, 햇빛도 보이기 시작했다. 비 온 뒤 맑음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무지개였다. 굽이진 작은 동산들 사이로 자신의 색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차가 길을 따라가면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점점 더 커지는 무지개를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핸드폰, 카메라, 가지고 있는 모든 기계를 동원하여 무지개를 담아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불가능이었다. 몇 퍼센트 남지 않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냥 하염없이 바라보기로 택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진하고도 선명한 무지개를 본 적이 있었을까.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없겠지 싶다. 하지만 무지개는 언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비가 온 뒤 날씨는 언제나 맑은 것처럼. 


강렬했던 무지개를 봐서였을까. 앞으로 몇 시간을 더 가야 하는 버스 안에서 멀미를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무사히 아르메니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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