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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기쁨 Oct 30. 2022

가꾸어지지 않은 설렘

조지아 카즈베기 에서의 흐린 날들은 지속되었다. 맑은 날의 카즈베기를 보겠다는 의지로 숙소를 연장하고 또 연장한 끝내 마침내 날씨가 좋다는 일기예보를 접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햇빛을 느끼며 눈을 떴다. 비가 오는 게 싫지는 않았지만 몇 날 며칠을 비만 보고 있어서인지 이 따사로움과 푸른 하늘이 기쁘게 마음에 닿았다.

조지아는 트래킹으로 유명한 나라 중 하나인데, 아마 트레킹을 하며 마주하는 풍경들이 아름다워서 일 것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트래킹을 조지아에 온 지 2주가 지나서야 하게 되었다. 마음이 들떴다. 오늘의 목표는 산 정상에 있는 유명한 성당까지 가기. 숙소 뒤에 있는 산을 따라 쭉 올라가면 된다는 주인아주머니에 말에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향했다.


오르는 길은 찾기 쉬웠다. 비가 오는 내내 보이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날이 좋으니 삼삼오오 같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모두가 이 트레킹을 하려고 기다린 것처럼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짐을 지고 백패킹을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꼬마 아이 둘을 데려온 가족도 있었고, 혼자 온 이도 있었다. 오르다 보면 이게 길인가 싶은 길을 걷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거다.


이 길은 꽤나 가파르기 때문에 중간중간 쉼을 가지며 올랐다. 올라가면서 마주친 이들과 눈인사를 건네고,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었다 중턱 정도 오면 조금은 뾰족한 바위가 하나 있는데 그 바위에 앉아있으면 뒷 배경으로 건너편 산이 하늘과 어우러져 사진 찍기 딱 좋다. 그곳에 나 또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내가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본 외국인들은 나와 같이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나에게 사진을 부탁한 이들은 인도에서 온 커플이었는데 과감한 포즈들은 연신 해내었다. 꽤나 거칠게 표현하는 몸짓에서 애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 뒤로 펼쳐진 풍경과 참으로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들 차례가 끝나고 내 차례가 왔다. 과감한 포즈를 하는 이들과 다르게 나는 수줍게 ‘브이’ 표시를 내밀어 보였다. 


그 순간 아주 조그마한 눈송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뜬금없는 설렘이었다. 나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고 행복한 표정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사진을 찍고 나니 눈은 이내 그쳤고 눈은 곧 비로 변했다. 나의 타이밍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생각하니 입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눈 대신 비를 맞고 올라가는 길은 평소에는 하지 않는 일이지만 오늘만큼은 이 찝찝한 일이 왜 인지 영화 같다 생각했다. 낭만이었다.


그 이후로도 하늘은 자주 변했다. 비가 멈추더니 해가 뜨다 가도 이내 흐려졌다.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했다. 곳곳을 카메라로 담으며 숨 좀 고르고 다시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 정상에 다 달았다. 고개를 들어 보면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성당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상에 도착하면 그곳에 있는 모두가 뛸 듯이 기뻐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 었다.


아래에서 보는 카즈베기의 풍경과 위에서 보는 카즈베기의 풍경은 천지 차이다. 위에서 본 카즈베기는 어느 면에서도 거친 매력을 발산했다. 그 매력에 흠뻑 매료돼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끝없이 펼쳐진 산맥들과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덥힌 산들, 가꾸어지지 않은 이곳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산 너머로 보이는 도로와 그 뒤로 펼쳐진 풍경 또한 아름다웠다. 그곳에는 행복이 넘쳐났다. 가족끼리 피크닉을 온 사람들, 성당에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들, 나를 포함한 많은 관광객들, 모두가 하나같이 보이는 풍경에 압도되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연이 주는 설렘이 어찌나 큰지 눈물이 나오려 했다. 


카즈베기,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가장 오고 싶었던 곳. 이 자연이 보고 싶어서 이곳의 날씨가 좋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곳. 전에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은 눈보라에 갇혀서 트레킹을 못했다고 말했던 이곳. 계속 비와 눈이 그려져 있는 일기 예보를 보며 날짜를 미룰까 고민했지만 그러다간 정말 못 갈 것 같아- 그 생각이 든 순간 바로 표를 끊었던 곳. 카즈베기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날씨가 비였지만 모든 날씨들은 나에게 아주 아주 예쁜 날씨였다. 매 순간이 설렘이었다. 성당에 오르고 스스로에게 백 번이고도 넘게 말했다. 카즈베기에 오기 정말 잘했다고. 이곳에 오르기 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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