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현철 Nov 02. 2022

차려주는 밥과 골라먹는 밥, 뭐가 더 행복할까?

평생 급식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점심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다.

당신의 오늘 점심 메뉴는 뭐였나요?  

김치찌개? 돈가스? 아니면 샤브샤브.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점심시간 모습은 이렇습니다.


‘째깍째깍, 대략 12시를 향해가는 사무실의 시계’

분침이 한 칸을 옮길 때마다 서로 눈치를 주고받는다.

태연한척하면서 모두 시계를 의식하고 있다.

한 사람이 눈짓으로 아랫사람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면

“부장님, 오늘 점심은 뭘로 할까요?”

어색하게 묻는 직원.


여기가 중요합니다. 부장님의 대답은?


저는 이런 장면에 로망이 있습니다.

오늘은 뭘 먹을까, 오늘은 뭐가 맛있을까에 대한 고민 말입니다.

왜냐고요?

저는 점심 메뉴를 고민하지 않는 급식을 먹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급식.

무엇인가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매일 쓰던 단어인데도 내가 맞게 썼나 의심이 될 만큼 낯설게요.

그럴 때 저는 국어사전의 도움을 받습니다.


급식.

식사를 공급함. 또는 그 식사.

조금 더 알고 싶으면 다음은 영어사전.

school meals 조금은 더 정교하네요.


네, 맞습니다. 저는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학교 식당에서 급식을 먹습니다.

급식을 먹는다는 것은 점심으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날그날 주는 것을 먹어야 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아내와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저녁 뭐 먹을까?”

“오랜만에 중식? 짜장면 어때?”

“아, 나 오늘 점심에 짜장면 먹었어. 미안”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었다니 정말 좋겠다’


짜장면을 먹었다니요. 그것도 점심으로.

어마어마 부럽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잘 모를 겁니다.

점심의 선택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핀잔으로 되받습니다.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급식 먹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데”

혹시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럼 제 말도 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장점도 있습니다. 일단 고민이 필요 없다는 것.

밥은 하루 중 내가 해야 하는 고민에 1도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냥 시간이 되면 내려가서 먹을 뿐.


그리고 또 다른 장점으로는 필수 영양소와 염분을 고려한 철저한 건강식단이라는 것.

게다가 HACCP 인증을 받은 시설에서 친환경 재료로 만들어진다는 것.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알아?”

아내의 점심 짜장면을 부러워하는 내게 아내가 일침을 놓습니다.

매일 뭐 먹을지 고민하는 것도 큰일이랍니다.

더구나 점심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반경의 식당도 빤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최소한 당신은 식판에 먹지는 않잖아”

내 말에 아내가 빵 터졌습니다.

“맞다. 나는 식판에 먹지는 않지”

웃는 아내를 보며 나도 함께 웃습니다.


물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일 수 있습니다.

무얼 먹을지가 고민인 사람에게는 그저 차려주는 밥이

차려주는 밥만 먹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골라 먹는 밥이 말입니다.


저는 입이 짧은 편입니다.

입이 짧다는 것은 가리는 음식이 있다는 것이고

가리는 음식이 있다는 것은 점심으로 먹지 않는 음식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가능성은 가리는 음식의 종류가 많을수록 높아집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은 아주 아주 불리합니다.

저는 생선을 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선은 급식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식재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주일 중에 한 번도 안 나오는 날은 절대 없습니다.

육식을 위주로 하는 요즘 식탁을 고려하면 오히려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저의 동경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은 차려주는 밥이나 골라먹는 밥이나

모두 감사한 것입니다.

최소한 차려먹어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1초에 몇 명이 굶어 죽는지나 알아?”

하신다면 더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감사와 안 감사의 차원이 아니라.

그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의 차원에서

고민 한 번 해보자는 겁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골라먹는 점심을 드시나요? 아니면 차려주는 점심을 드시나요?

당신은 골라먹을 때 행복합니까? 아니면 차려진 밥을 먹을 때 행복합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몬스테라의 새 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