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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Nov 01. 2022

몬스테라의 새 순

외부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힘

몬스테라 하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멕시코에서 왔다고 알려진 이 식물은 외떡잎식물로 굵은 줄기와 큰 잎이 매력적입니다. 큰 잎은 갈라지고 구멍이 있는데 이는 폭우와 강한 바람에도 큰 잎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발달한 구조라고 했습니다. 갈색 토분에 자리 잡은 몬스테라는 식물원의 많은 식물 중에서도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른 아침 신비로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몬스테라의 잎 끝 맺힌 물방울입니다. 처음에는 토분 주위의 물자국이 무엇일까 의문이었는데, 새벽녘 몬스테라 잎 끝에 매달린 물 한 방울을 발견하고는 그 신비함에 한참을 바라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영롱하다는 표현이 딱 맞았습니다.


물은 매달 말일에 한 번 줍니다. 그럼에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중간 마디에서 새 잎에 뻗어 나옵니다. 새 잎은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나오는데 몬스테라가 새 잎을 뻗고 동그랗게 말린 잎을 하나씩 펼치는 동안, 마치 하나의 새 생명을 탄생하는 인고의 시간처럼 힘들어했고, 나도 마음으로 몬스테라를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몬스테라를 키우기 한 해가 지나고 원래 있었던 토분이 작아 보이듯 잎이 무성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관심과 흥미는 왜 이리도 지속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더 이상 새 잎을 펼치는 몬스테라가 반갑지 않았고 사방으로 뻗어가는 그 잎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빵끈으로 시작했습니다.

식빵을 사 오고 남은 빵끈을 두 개 정도 연결하여 몬스테라의 줄기를 서로 당겨주었습니다. 사방으로 퍼진 줄기가 가운데로 조금 모이며 조금 더 정돈된 듯한 모습이 되었어요. 철사로 교묘하게 재단되어 작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분재들을 보며 감탄보다는 식물이 느꼈을 고통을 먼저 느꼈던 나지만, 그런 나 조차도 몬스테라에게 예쁘게 올라갈 길을 빵끈으로 정해주고 있었습니다. 이중적인 내 모습이 슬펐습니다. 너를 위한 일이라는 주장은 나만을 위하나 것이겠지요. 내가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을 나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지지대를 샀습니다.

일명 고춧대라고 하는데, 왜인지 모르지만 고추는 처음에 지지대를 세워야 하는 식물인가 봅니다. 굵은 지지대를 토분의 가운데 꽂고, 사방에 하나씩 추가한 다음 노끈으로 울타리를 쳤습니다. 윗 모양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몬스테라를 이렇게 저렇게 재단하면서 임시방편으로 막아오기를 6개월 나의 인내심에도 바닥이 났는지 마음을 먹고 결단을 했습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내 몬스테라는 두 갈래의 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선 뿌리에서부터 올라오는 중심 줄기와 바로 아래서 옆으로 나온 줄기 양쪽으로 뻗은 줄기가 흡사 승리의 브이처럼 토분 바로 위에서부터 양쪽으로 갈라져있습니다.


특단의 조치란, 이 가운데 하나의 줄기를 자리기로 한 결심입니다. 지금까지 잎은 정리를 해봤지만 줄기를 통째로 자르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 역시 처음 하는 일은 뭐든지 조심스럽습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린 문제는 어느 것을 자르냐는 것입니다. 첫째 중심 줄기는 가장 굵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3개의 잎이 자리를 잡고 있고요. 두 번째 줄기는 조금은 더 얇습니다. 그리고 1개의 잎이 있습니다. 처음이니 가장 피해가 작은 것을 결정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를 잘라도 가장 효과가 큰 것을 결정할 것인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고민했던 햄릿의 고뇌만큼이나 저에게는 심각합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요?

저의 결정은 하나를 자르더라도 효과가 큰 중심 줄기를 자르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새가슴이라 아내에게도 확인을 받습니다.


“이거 잘라도 괜찮을까?” 저보다는 대범한 아내는 “괜찮아, 그냥 잘라” 쉽게 말합니다. 그 성격이 살짝 부럽기도 합니다.


몬스테라 줄기를 자르는 날.

예상치 못했던 아픔을 주게 되어 미안한 마음으로 그러나 또 한편 이게 널 위한 일이라 자위했습니다.


싹뚝


잘린 몬스테라의 줄기에서는

맑은 액체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잘려나간 단면과 드러난 중심을 감추기 위한 몬스테라의 눈물이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니면 외부의 무수한 나쁜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일일지도요. 잘려나간 단면을 바라보며 함께 마음 아파하기 일주일. 하얗게 모습을 바꾸며 제법 딱딱하게 만들어낸 몬스테라를 보며 가슴을 쓸었습니다. 그렇게 외로운 한 잎의 몬스테라가 되었습니다.


“깔끔하네”


몬스테라를 보고 지나는 아내가 한마디 던집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고 다시 일상이 지납니다. 업무와 약속으로 바쁜 나는 나의 시간을, 거실 한켠 안마의자 옆에 자리 잡은 한 잎 몬스테라는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빨갛게 물들고 떨어진 단풍잎이 가을이 깊어감을 알려주는 10월의 마지막 날. 다시 몬스테라에 물을 주는 날이 되었습니다.


원래의 자리에서 꺼내 토분을 들어 올리고 베란다 물 주는 자리에 꺼내놓은 순간, 눈에 들어온 몬스테라의 새 순!


몬스테라는 잘린 줄기를 추스르는 동시에 그때부터 다시 다른 새 순을 틔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줄기의 옆면을 뚫고 나오기 위해 그 줄기의 깊은 곳에서부터 순을 만들었을까요?


내가 줄기를 자른 순간은 몬스테라에게 예상치 못한 절망의 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몬스테라는 또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 불만도, 시위나 항의도 없이,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한다.


그 숭고한 식물의 정신에 경건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한참을 앉아 시선을 고정해두고 몬스테라와 함께했습니다.


일전 어떤 일을 당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동의할 수 없는 불합리한 일이라는 생각에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조금도 나의 것을 내어주지 않으리 다짐했습니다. 비록 나에게도 손해가 있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몬스테라는 나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저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잘려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나는 순을 틔우지 않겠다의 항의가 아니라 그 다음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삶의 태도. 그건 극도로 순수한 생의 의지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삶의 모습이 필요한 요즘입니다. 배려라는 이름을 떠나서 그냥 나에게 집중하는 것. 세상에는 두 가지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할 수 없는 일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할 때 우리는 좌절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몬스테라는 몬스테라의 시간을 걸을 것입니다. 저 새순은 앞으로 굵은 줄기가 될 테지요. 몇 장의 잎을 더 가지게 될지는 몬스테라만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응원해주려고 합니다. 몬스테라에게 물을 주는 날 저는 몬스테라에게 또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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