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장래희망 무엇인가요?라는 질문, 살면서 꽤나 자주 듣는, 또 보편적 관용어로 마주하는 질문입니다. 어린 시절 저의 꿈은 모두 특정 직업으로만 자리했어요. 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거의 모두가 어떠한 ‘직업인’이 꿈이라고 이야기했던 유아기가 있을 겁니다.
저의 꿈은 화가, 피아니스트, 기자, 웨딩플래너, 매거진에디터로 대변되었습니다. 아주 어릴때부터 멋쟁이의 모습을 동경했다니 새삼 참 나답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다 여차저차 현생을 사는 디자이너가 되긴 했습니다. 다시 보니 제 꿈의 모양새를 모두 다 합쳐 놓은 것이 디자이너로 발현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디자이너가 되어버린 사람은 ‘직업인’이 궁극적인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하는 사람’ 보다, 그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20대 중반 언젠가, 회사생활에 꽤나 찌들어 있던 때였을 거예요. 출근하는 비좁은 지하철 안, 핸드폰에 뿅! 하고 나타난 '파리행 티켓 특가' 푸시 광고를 보고 꽤나 거금을 들여 5분 만에 시발비용을 썼습니다. 그렇게 대책 없이 떠난 파리에서 새로운 장래희망을 찾았어요.
파리의 할아버지들은 모두 귀엽더라고요. 포멀 한 정장쟈켓에 체크무늬셔츠를 입고 빛바랜 형형색색의 모자를 쓰고는 아이처럼 웃으며 시장에서 과일을 사거나 커피를 주문했어요.
할아버지들의 아웃핏은 물론이지만, 할아버지들의 태도를 더 닮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요. 아! 물론, 꼭 프랑스 할아버지들 뿐 아니라, 우리 동네 골목 어귀에 작은 의자를 들고 나와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 할아버지, 길가에서 파는 식물이나 화분들을 바라보며 무얼 사갈까 고민하는 할아버지들도 저의 아이돌입니다.
제가 닮고 싶은 할아버지들은 세월과 역사를 어딘가에는 짊어지고 있지만, 그게 무색하게도 말간 장난기나 미소를 지니고 계십니다. 물론, 그저 지나치며 그분들의 찰나를 관찰하거나- 우리 강아지를 예뻐해 주시는 할아버지들과 짧은 안부 인사를 나누며 바라보는 게 전부이지만요. 할아버지들의 포근한 냄새와 부들부들한 셔츠의 질감, 주름진 얼굴 사이로 아주 잠시 나타나는 소년 같은 반짝임 같은 것들이 저를 웃음 짓게 합니다. 나의 도시는 여전히 바쁘고 치열하거나, 불친절하고 신경질적인 면모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불쑥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조급하게 만들기도 해요. 하지만 할아버지들은 그런 것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천천히 그들만의 시간으로 순간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져요. 마치 내 세상은 타임랩스인데, 할아버지들의 공간은 슬로모션 같은 느낌입니다.
조금 짜증이 나거나 불쾌한 감정이 스칠 때에 ‘아, 이러면 귀여운 할아버지가 될 수 없지. 세상만사 다 귀엽다고 여기면서 여유롭게 지내야 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말랑해집니다.
지난여름 새파란 모자 하나를 샀어요. 나도 할아버지들처럼 곱게 차려입고, 모자를 머리 위에 얹은 후에- 햇볕 아래 천천히 산책을 하고 싶어요. 그러다 가만히 우리 동네 어디에나 있는 장미넝쿨이나 오래된 나무들을 바라보려고요. 이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나도 나이가 들어 괘념치 않고 허허 웃을 수 있는 귀여운 할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지금의 내 장래희망은 ‘모자를 쓰고 매일 산책하는 귀여운 할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의 내일, 혹은 아주 먼 미래는, 장래희망은 어떤 모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