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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 Oct 19. 2023

박해의 역사가 잠들어 있는 참형의 터

서울 서대문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지난 출사에서 종교 이야기가 잠시 나와서 말인데, 사실 지금의 현대인이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기까지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간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싸워 얻어낸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무성하다. 문화와 예술, 정치, 참정권 등이 그러한데 종교는 오죽할까.


   국교가 있는 시대에 태어나 원하지도 않는 종교를 섬겨야 한다고 상상을 하니 아찔하다. 안 그래도 하지 말라는 것들에 대해서는 반항심이 가득한 성향인데, 아마 모두가 잠든 시각이면 이념을 쫓아 모인 동지들과 투쟁하듯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일삼지 않았으려나.


   이번에 소개할 출사지는 약 240여 년 전인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참형을 당했던 박해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공원과 박물관이 있어 가벼운 산책 겸 둘러보기 좋고, 또 전시실 내에는 흡사 현대 미술처럼 보이는 멋진 조형물이 많아 사진으로 담기에도 제격이다. 조선후기 사상사의 특성을 주 내용으로 한 상설전시와 특별기획전이 웬만한 다른 박물관보다 알차게 전시되어 있다. 서울 지하철 2, 5호선 충정로 역에서 하차한 뒤 도보로 5~7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니 종교와 박해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즈음 다녀오길 추천한다.  




   서소문은 조선시대에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에 있었던 간문으로, 소의문이라 불렀는데 주로 도성 안의 시신을 밖으로 내보내는 시구문의 역할을 했다. 현재의 서대문구 아현동에서 서소문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 위치한 서소문 밖 네거리는 강화도를 거쳐 양화진과 마포, 용산 나루터에 도착한 충청, 전라, 경상 등 삼남지방의 물류가 집결되는 곳이었고, 이것을 도성으로 반입하는 통로이자 가장 번화한 지역이었다. 인접한 서소문시장은 17세기부터 자연스레 상업적 농업, 수공업이 성행했고, 한양 도성 밖의 대표적인 외교와 상업활동의 중심공간으로 발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서 정말 사람이 죽어나갔다. 정부의 사업기관인 형조, 의금부와 가까운 탓에 참형을 집행하기에 편리한 곳이었고, 많은 이들이 오고 가는 시장이 인접해 있으니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최적의 터였다. 당연히 천주교인들의 처형 역시 이곳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의 외관은 붉은 벽돌로 높게 채워져 있다. 똑같은 벽돌들이 켜켜이 붙어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동시에 감옥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건축을 맡은 유승현 교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사방이 무표정한 벽돌벽으로 둘러싸여 하늘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유도했다고 한다. 덕분에 하늘은 물론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에서 순교한 44인을 형상화 한 조형물이 더욱 눈에 띈다.


죄인의 목에 씌웠던 칼을 중첩해 형상화 한 작품 <순교자의 칼>. 정면에서 담기보단 측면에서 찍는 것이 조금 더 쓸쓸해 보인다. 이번 출사 사진들은 다 어둡게 보정했다.


곳곳에 작은 물길이 흐른다. 물에 비친 조형물을 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옆 건물이 나왔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면 순교자들과 예수를 형상화 한 조형물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조명이 어두운 스폿이 대부분이라 밝게 찍으면 노이즈가 생길 수 있으니 노출을 한 스탑 더 낮게 설정하길 권한다.  


지하 2층 까지는 내부의 벽 역시 외관과 동일한데 특히 화장실로 가는 길의 벽이 아무런 타 장식 없이 세워진 모습에 소실점을 가운데로 맞추고 셔터를 눌렀다. 세로로 보여주기 참 좋은 구도.


지하 3층으로 내려가면 조선 후기 사상사의 흐름을 다룬 상설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지하 3층으로 내려가면 권석만 작가의 작품 <발아>를 볼 수 있다. SNS에서 포토 스폿으로 유명한데 실제로 보면 훨씬 웅장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씨앗을 표현한 조형물의 사이사이를 걸을 때마다 이곳에서 피어난 이념을 다시금 생각했다.





한옥집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9길 12 1층

02-362-8653

매일 10:30-21:30

박물관과 공원을 다 둘러본 뒤 서대문역 부근으로 이동하면 인근에 아주 오래된 김치찌개 집이 있다. 사골에 푹 졸인 김치찜과 찌개, 계란말이를 맛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웨이팅은 필수다. 김치 맛에 취해 밥을 두 공기나 먹을 수 있으니 조심할 것.




참고문헌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소개

스페이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건축 인터뷰


원고에 싣지 못한 B컷은 인스타그램 @play_archive_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출사의 맛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나만 알고 싶은 것은 사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알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작가에게 촬영지도 마찬가지죠. 제가 기록한 장소가 희귀한 출사지는 아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인 시선을 통해 진정한 출사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맛을 더해 줄 식당 정보는 이번 주말 출사를 계획 중인 당신을 위한 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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