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역사 수업을 그다지 좋아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세계사가 연도별 일어난 사건들을 잘 외우기만 하면 쉽게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과목이라 많이들 선택하던 시기에 수능을 치른 세대이지만, 나는 암기력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이해를 해 보자니 그러고 싶은 마음조차도 생기지 않았기에 역사와 관련된 학문이라면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런데 박물관이라는 ‘공간’은 유독 좋았다. 교과서 밖으로 튀어나온 역사가 종잇장이 아닌 눈앞에 실제로 모여있는 고고한 공간.
내가 박물관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이야기하자면 2박 3일도 모자랄 것이다. 중학교 시절, 똑딱이라고 부르던 콤팩트 카메라를 들고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다른 피사체를 찍으러 갔던 곳 역시 박물관이었고, 새로 시작하는 기획 전시를 보려고 문화생활비를 위한 통장을 따로 만들어 저금을 하기도 했었다. 이 자금(?)을 모으기 위한 계획은 꽤나 치밀했는데, 한 주의 시작과 함께 엄마가 주는 버스 카드 충전용 용돈에서 절반을 떼고 충전을 한 뒤 하굣길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집에 오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교통비가 많이 모자라서 등굣길에도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학교에 가느라 1교시 시작 전 아슬아슬하게 교실에 도착하는 바람에 벌점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돈은 금방 모을 수 있었고, 계획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그만큼 나는 박물관에 진심이었는데, 오죽하면 전시실 유리 안에 덩그러니 놓여 고풍스러운 자태를 자랑하는 유물들이 꼭 영화처럼 자정이 넘으면 살아서 움직이는 것도 우리가 몰랐던 진짜 모습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마주하려면 미래에 직업은 큐레이터나 도슨트가 되는 것이 적당하겠다는 망상에까지 도달했다.
따분한 수업에서 보던 사진 속 문화재는 교과서에 실린 모습과 많이 다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산물의 그림자는 처연하리 만큼 고요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결국엔 모든 것이 인문학이라는 말처럼 사람과 사람이 살며 만들고 거쳐가는 그 많은 것들이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으니, 박물관에 가야 할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 정도는 알아두자
1. 플래시와 삼각대 사용 제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모든 전시실은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입장 시 전시된 유물들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플래시 사용은 자제하라는 권고를 안내받을 수 있다. 안전사고 발생을 우려해 삼각대 사용 또한 제한된다. 최근에는 짐벌이나 셀카봉 등의 장비도 같은 이유로 제한을 받을 수 있으니 전문 장비를 이용한 촬영 시 사전에 문의를 해 답변을 듣는 것이 좋다. (이건 상식인데 국립박물관뿐만 아니라 고궁등의 문화재도 마찬가지다.)
2.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해 보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시는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지원한다. 대여비는 3천 원에서 5천 원 선이고 녹음 성우는 전시마다 다르다. 기기를 착용한 후 작품 앞에 쓰인 번호를 누르면 해설을 들을 수 있는 방식. 전문적인 해설을 함께 듣고 사진을 찍는다면 조금 더 이야기가 있는 컷을 남길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내의 국립박물관 중 최대 규모로, 소장 유물은 약 150만여 점에 달한다. 워낙에 박물관을 좋아하다 보니 지방에 여행 일정이 있으면 그 지역의 국립박물관을 꼭 들르는 편인데, 규모만큼은 중앙박물관을 따라갈 곳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경주는 논외)
박물관의 내부의 전경을 담으려면 3층보다는 2층이 좋다. 특히 중앙에서 소실점을 잡고 세로로 촬영하면 박물관의 규모를 자랑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환산 화각 20mm로 촬영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채광이 좋은 건물이라 이렇게 빛이 들어오는 벽의 느낌도 나쁘지 않다.
청자가 가진 고유의 색감을 살리기 위해 노출은 2스탑 아래로 촬영한 후 주변부를 조금 더 어둡게 보정했다. 전시실 공간은 조명이 대부분 어둡기 때문에 저감도로 촬영하면 좋겠지만, 삼각대 사용이 어려우므로 적절한 감도와 노출값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촬영 시 피사체를 제외한 주변부가 나오는 것을 선호하지 않아서 화각을 더 깊게 들어가는 편인데 이 분청사기는 전시해 놓은 자태가 너무 완벽해서 유리와 받침 부분까지 다 나오게 세로 구도로 촬영했다.
가까이서 유물만 담는 것도 멋있지만 포커스를 맞추니 이렇게 조금 멀리서 당겨 촬영하는 것도 괜찮다. 확실히 전시실의 벽의 톤이 미니멀해서 유물이 더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시된 유물은 촬영자의 눈높이와 같은 레벨로 촬영하는 것보다 약간 아래서 위로 담는 것이 더 웅장한 맛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운영진은 기획변태집단이 분명하다. 뭐 하나 그냥, 대충 디자인하는 법이 없다. 전시된 유물이나 문화재가 가장 이목을 끌지만 이렇게 조형물 하나하나도 다 예뻐서 셔터를 누르게 된다.
¶ 서울 용산구 이촌로 224 한강쇼핑센터 지하 1층
☎ 02-797-1357
월-토 11:00-17:00
이촌동에서 오래 산 사람치고 이 집을 모르는 이가 없다. 이촌동은 예전부터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라(오죽하면 일본 유치원도 있다) 이자카야나 우동 초밥 등을 주 메뉴로 하는 일식집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한강 초밥은 40년이 넘은 노포다. 우동 보다는 자루소바나 냉모밀이 더 맛있고 김초밥과 유부초밥은 꼭 사이드 메뉴로 함께 먹어야 한다.
원고에 싣지 못한 B컷은 인스타그램 @play_archive_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나만 알고 싶은 것은 사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알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작가에게 촬영지도 마찬가지죠. 제가 기록한 장소가 희귀한 출사지는 아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인 시선을 통해 진정한 출사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맛을 더해 줄 식당 정보는 이번 주말 출사를 계획 중인 당신을 위한 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