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의왕시 초평동 왕송호수
‘탐조’를 알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작년 여름 모 브랜드에서 작가 전시 취재 의뢰가 들어와 K선배와 함께 외근을 나갔을 때였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셔터를 남발하고, 그중에서 겨우 몇 장을 건져내는 나와는 달리 최고의 한 컷을 위해 모진 바람과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담아낸 그의 사진은 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통 가득 차 있었다.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경험을 축적해 온 장인들을 마주할 때면 내가 무언가를 탐하던 순간들은 그저 물경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괜스레 숙연해지곤 하는데, 나는 그날 새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반짝이던 그의 눈빛에서 ‘아 이 사람 덕력은 만렙이구나’라는 것을 느꼈고, K선배는 자연환경에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그의 촬영 태도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속 사진작가인 숀 오코넬과 닮았다고 했다.
취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젠가 여유가 된다면 탐조에 입문해 봐야겠다는 막연한 꿈으로 일렁였다. 그로부터 반년 하고도 두어 달이 더 지난 시점이 되어서야 첫 탐조를 나가게 됐는데, 그 사이 K선배는 나보다 먼저 탐조에 입문했다. 매거진 마감 후 일찍 퇴근한 날이면 집 근처 호수에서 새를 관찰하고 종종 들려주던 후기를 전해 들으며 나는 탐조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
겨울 철새만 약 50여 종이 서식하고, 관찰할 수 있는 새가 160여 종에 달하는 왕송호수는 첫 탐조 장소로 손색이 없다. 1호선 의왕역 남쪽으로 도보로 10분 즈음 걷다가 흡사 대포 같은 망원렌즈를 들고 있는 탐조인들이 보인다면 다 온 것이다. 호수 초입에서 사냥을 마치고 힘차게 날개를 말리는 민물가마우지의 모습에서 "어서 와" 하는 환영사가 들린다.
이 정도는 알아두자
1. 드레스 코드는 어두운 계열로
나무나 풀의 무늬를 닮은 위장 렌즈 스킨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듯 탐조에는 어울리는 룩이 있다. 예민한 새들을 위해 밝고 튀는 컬러의 옷보다는 어두운 무채색 계열을 입는 것이 좋고, 오래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을 신발이 필수다. 따가운 햇빛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해 줄 챙 넓은 모자는 덤.
2. 전자식 셔터 기능이 있는 바디라면 무음으로
야생의 새들과 자연적인 거리 유지를 위해서는 비싸고 좋은 망원렌즈도 필요하지만, 쉬고 있는 새들이 놀라지 않게 셔터음을 줄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카메라들은 전자식 셔터 기능이 있으니 탐조를 나가기 전에 꼭 셔터 설정을 바꿔보자.
민물가마우지는 잠수 천재다. 수면 아래로 쏙 사라진 후 어느 곳에서 다시 올라올지 예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날개에 기름샘이 없어서 방수가 안 되는 지라 수영 후엔 꼭 날개를 쭉 펴고 푸드덕푸드덕 흔들며 말려주는데 그게 꼭 춤을 추는 것 같아서 굉장히 멋지다. 천적이 없어서 최근 개체수가 많이 늘어났는데 뉴스에 안 좋은 면만 보도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본래 철새로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중국이나 일본으로 이동하는 개체였지만 최근 지구 온난화 탓에 텃새로 자리 잡았다.
흰 이마가 돋보이는 물닭. 눈이 붉은색인데 털은 검은색이라 굉장히 매력적이다. 빠르게 날아갈 때 흡사 물 위를 달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머리 위에 달린 깃이 인상적인 뿔논병아리. 암 수 두 마리가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 그 사이로 하트 모양을 볼 수 있다는데 안타깝게도 이날 나에게 그런 영광은 없었다.
학 혹은 두루미, 간혹 황새라고 오해들을 하는데 왜가리라 쓰고 킹가리라 읽어야 한다. 도시 하천의 깡패. 뾰족한 부리로 뭐든 다 찍어버릴 기세이다. 몸체가 크다 보니 윙스펜도 길 수밖에 없는데 날아갈 땐 또 그게 장관이다. 가만히 서 있을 때 머리깃 두 가닥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도 정말 멋지다. 가만히 서 있을 때 사진을 찍고 날아가는 모습은 영상으로 담았는데 감탄이 절로 나왔다.
¶ 경기 의왕시 왕송못동로 207-13
☎ 031-461-0601
매일 11:00-21:00
K선배가 찾은 엄청난 맛집이다. 고등어 보쌈과 석쇠구이를 시켰는데 보쌈은 고등어조림에 가깝다. 불 향이 가득한 석쇠구이 고기와 함께 푹 끓여낸 묵은지에 고등어를 싸 먹으니 밥 두 그릇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반찬도 전부 맛있어서 가득 부른 배를 통통 두들기며 새를 관찰할 수 있었다. 왕송호수 탐조에 기본 코스로 반드시 가야 하는 집.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탐조 일기>
삽사롱
카멜북스
첫 탐조를 나가기 전에 나를 탐조의 세계로 완전히 빠지게 만든 정말 즐거운 책이다. 본래 인스타그램에서 귀여운 툰으로 연재되던 이야기로 탐조 용어, 준비물과 자세 등 많은 상식을 재밌게 습득할 수 있다.
<이토록 재밌는 새 이야기>
천샹징, 린다리
북스일
첫 탐조 이후 조류학에 기본적인 내용을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구매한 책인데 새들의 몸 구조와 종별 행동 패턴 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하다. 이를테면 새들이 공중에서 배설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던지, 날개를 펴고 일광욕을 하는 과정에서 살균 효과로 인해 기생충을 예방한다는 사실이라던지.
<한국의 새>
이우신, 구태희, 박진영, 타나구찌 타카시
LG상록재단
관찰한 새의 종을 알아내는 것을 ‘동정’이라 한다. 동정을 위해선 새 도감이 필수인데 휴대성을 고려해 작은 사이즈를 지참하는 것이 좋다. LG상록재단에서 출간한 <야외원색도감 한국의 새>는 가로 117mm 세로 182mm의 작은 사이즈로 한국의 주요 철새 도래지 지도와 기본적인 탐조 용어와 예절 등의 정보까지 포함하고 있다.
원고에 싣지 못한 B컷은 인스타그램 @play_archive_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나만 알고 싶은 것은 사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알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작가에게 촬영지도 마찬가지죠. 제가 기록한 장소가 희귀한 출사지는 아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인 시선을 통해 진정한 출사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맛을 더해 줄 식당 정보는 이번 주말 출사를 계획 중인 당신을 위한 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