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새재 도립공원과 오픈세트장
경상도 여행 계획을 세우다가 남편이 문경새재에 들러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도립공원을 지나 오픈세트장까지 보고 오는 코스로 여유롭게 두 시간쯤 소요되고, 하나의 지역이지만 각각 다른 느낌으로 촬영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출사지라 어쩌면 원고 두 개를 한 번에 해치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냉큼 수락했다. 마침 중복도 지났겠다 곧 가을이 올 것만 같은 기세로 시원한 바람까지 솔솔 불고 있어서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이 계절의 잔상을 조금이나마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물론 열매가 익어가고 나뭇잎들의 색이 점점 바래면 그것 또한 장관이겠지만, 녹음이 제대로 농익은 골든타임을 놓칠 수는 없지.
문경새재는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문경새재는 지형이 험하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는 산자락이지만, 도립공원은 문경새재로 들어가는 초입구인만큼 경사가 완만하고 볼거리가 많아서 관광객들이 도전하기에 어렵지 않은 코스이다.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계곡이 시원해서 한여름인 7-8월에도 다른 지역보다 선선하고, 코끝을 자극하는 숲 냄새와 산책로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예쁜 햇살을 마주할 수 있으니 셔틀 전동차를 이용하기보다는 걸어서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게다가 이곳은 촬영을 목적으로 허가받은 차량이거나, 도립공원 관리 차량이 아니면 출입을 엄격하게 제안하고 있어서 걷다가 작은 야생동물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정도로 환경 보호가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절대 만지거나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
1관문을 지나 약 10분 정도를 걷다 보니 오픈세트장 입구가 보였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더니, 생각보다 길이 험하지 않아서 '어차피 새는 날개가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우리 선조들은 풍이 심하다니까.
도립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 올라가다 보면 제일 먼저 넓은 계곡이 반겨준다. 다리 위에서 계곡을 바라보고 찍었는데 내리쬐는 빛이 강해서 ND필터를 함께 사용했다.
문경은 사과의 고장이다. 산책로 옆에 듬성듬성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아직 빨갛게 익지 않은 색이 주변의 풀들과 조화를 이룬다. 문경시에서 사과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심은 것이니 만지거나 열매를 따지 말고 눈으로만 봐달라는 안내문이 있다.
1관문은 누가 봐도 포토존이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관문의 입구는 한 컷 밖에 찍지 못하고 한산해지기를 기다리며 해태를 담아보았다.
오픈세트장에 도착하면 갑자기 조선시대로 떨어진 시간여행자가 된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광화문을 기준으로 양반촌의 상징인 기와집이 자리하고 있고, 도성에서 멀어질수록 초가집이 많이 보이는데 실제로도 그러했을 테니 나름의 고증을 잘한 셈이다.
영화 <관상>에서 배우 송강호가 우두커니 모래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광화문. 실제 광화문 보다는 작은 사이즈로 제작되었지만, 벽돌과 현판의 디테일은 꽤 그럴듯하다.
처마 끝자락이 아름다워 찍으려는데 다람쥐 한 마리가 재빠른 걸음으로 기와 위를 올라갔다. 단렌즈만 세 개를 챙겨 갔는데 안타깝게도 다람쥐를 담기에는 화각대가 전부 맞지 않았고, 발줌으로 커버하기에는 바로 앞이 길이 끊기는 곳이었던지라 망원렌즈를 구비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명분이 생겼으니 다음 달 할부는 망원렌즈다.(야호)
양반촌과 대비되는 빈민촌
오픈세트장은 문경새재의 자연을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조성했다고 한다. 산에서부터 흐른 계곡물 역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다리 위에 인물이 올라섰을 때 구도를 맞추어 촬영해도 좋을 듯하다.
주차장 한쪽에 드라마 촬영을 위한 소품들이 놓여 있다. 누렇게 바랜 옷이 쨍한 하늘이 대비되어 보여서 관계자의 허락을 구하고 셔터를 눌렀다.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22 새재할머니집
☎ 054-571-5600
월~일 11:00-18:00 (매주 수요일 휴무)
관광지답게 식당이 많아서 생각보다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나오는 반찬과 차림새가 만족스러웠던 새재할매집. 고기는 구워져서 나오기 때문에 편히 먹을 수 있었다. 다만 양이 적어 아쉬웠을 뿐.
2022년 8월 퇴고한 원고입니다. 일부 원고와 사진은 월간 디지털카메라매거진 온라인 구독 서비스 <출사의 맛> 코너에 연재되었습니다. 원고에 싣지 못한 B컷은 인스타그램 @play_archive_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나만 알고 싶은 것은 사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알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작가에게 촬영지도 마찬가지죠. 제가 기록한 장소가 희귀한 출사지는 아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인 시선을 통해 진정한 출사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맛을 더해 줄 식당 정보는 이번 주말 출사를 계획 중인 당신을 위한 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