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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 Dec 05. 2022

예로부터 높은 곳을 좋아했던 민족

경남 밀양 영남루

   장마가 지나고 나면 더위가 한 풀 꺾인다지만 아직까지 한낮의 온도는 여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공기는 예년에 비해 점점 더 뜨거워지고,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과 밀집된 탓에 스트레스 지수까지 높아지니 자연스레 높은 곳에 올라가 시원한 뷰를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휴가 일정 중에 돼지국밥을 포기할 수 없어서 밀양을 들러야 했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원고를 위한 출사지까지 찾다가 영남루만큼 괜찮은 곳이 없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노린 것이 분명한 일정이 맞다.


   영남루는 조선 헌종 10년인 1844년에 재 건조된 누(樓)이다. 본래 누(樓)는 사방이 트여 있고 마루를 높게 만든 일종의 집으로, 손님과 함께 다과를 즐기거나 한적하게 쉴 수 있는 휴식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밀양강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뷰인지라 가끔은 밀양 군수가 여러 이들과 함께 음주가무를 즐기기도 했을 것이고, 또 전쟁이 터졌을 당시에는 군사 요새로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다. 현재는 밀양 시장 앞 도로를 건너 내려가다 경사가 조금 높은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내리쬐는 태양 때문에 손에 든 카메라 바디의 온도가 점점 높아질 때쯤 영남루의 입구인 관리사무소가 보였다. 골목에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 굳이 공영주차장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날이 더울 땐 체력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누각 중 하나인 영남루는 보물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함께 쓰는 공간인 만큼 눕거나 취식을 할 수는 없다. 조심스레 신발을 벗고 올라서니 사방이 탁 트인 시야와 막힘없이 통하는 바람 덕분에 머리까지 시원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래로는 한적하게 흐르는 밀양강이 보이고 옆으로는 밀양읍성과 옛 영남사의 부속 암자였던 무봉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 초여름의 여린 색깔을 간직하고 있는 풀들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다음 계절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단풍이 물든 시기에 해가 지는 모습을 담는다면 아마 밀양시 홈페이지에 오를 정도는 되지 않을까. 




관리사무소 앞에서 바라본 영남루의 모습. 많은 시민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인 만큼 반드시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한다. 앉거나 서서 쉬는 것은 가능하나 음식물을 섭취 또는 누워 있는 행위는 불가능하다.


영남루에 올라 바라본 밀양강의 모습. 날이 맑아 물에 비친 산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들어온다. 30mm 렌즈로만 촬영했는데 해가 질 때 즈음 광각렌즈를 챙겨 올라온다면 보다 넓고 멋진 풍경을 한 번에 담아낼 수 있을 듯하다. 


밀양강을 뒤로한 시야엔 이곳으로 들어오는 일주문이 있다. 기둥의 벗겨진 칠이 이곳의 세월을 말해준다.

 

영남루의 맞은편 천진궁으로 들어가는 만덕문. 문은 열려있었지만 보수로 인해 출입이 통제되고 있어서 멀리서나마 천진궁을 담아보았다. 


영남루를 나오면 무봉사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나온다. 나무들 사이로 내려와 계단에 비치는 햇살이 인상적이다.


영남루만큼이나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해 온 것이 바로 밀양시장이다. 방앗간 옆에 널어놓은 홍고추가 바삭하게 햇빛 아래서 잘 마르고 있다. 


코 끝을 자극하는 뻥튀기의 냄새에 이끌려 셔터를 누르고 말았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시장의 소음을 뒤로하고 걷다 보면 시간이 멈춘 듯한 간판과 골목이 보인다. 




단골집

¶ 경남 밀양시 상설시장3길 18-16 단골집

☎ 055-354-7980

월~일 10:00-20:00 (매주 수요일 휴무, 재료 소진 시 영업 종료)

많은 사람들이 ‘돼지국밥’ 하면 부산을 떠올리지만 밀양 역시 돼지국밥의 본 고장이다. 여러 방송에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은 터라 분점을 낼 법도 하지만 밀양 시장 내 작은 가게를 온전히 지켜내며 하루에 딱 정해진 양만을 판매하고 있다.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에 밥이 토렴해 나오는 식. 밥을 크게 한 술 떠 고기를 올리고 함께 나오는 쌈장을 그 위에 올려서 먹으면 한 그릇을 더 주문하고 싶어 진다. 고기 역시 누린내 없이 잘 삶아서 과연 비결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다 이 집의 상호가 왜 ‘단골집’ 인지 알 것도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영남루까지 걸어가야 하니 촬영을 시작하기 전 맛있는 국밥으로 배를 먼저 채우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2022년 7월 퇴고한 원고입니다. 일부 원고와 사진은 월간 디지털카메라매거진 온라인 구독 서비스 <출사의 맛> 코너에 연재되었습니다. 원고에 싣지 못한 B컷은 인스타그램 @play_archive_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출사의 맛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나만 알고 싶은 것은 사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알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작가에게 촬영지도 마찬가지죠. 제가 기록한 장소가 희귀한 출사지는 아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인 시선을 통해 진정한 출사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맛을 더해 줄 식당 정보는 이번 주말 출사를 계획 중인 당신을 위한 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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