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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 Feb 10. 2023

집 하나는 참 잘 지으셨네요, 선생님.

경북 안동 치암고택

   휴가를 숙소에서 오로지 휴(休)로만 보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휴(休)의 초점을 음식이나 관광에 맞추는 이가 있다. 남편을 만나기 이전에 나는 휴가를 떠나면 계획을 너무 자잘하게 세운 탓에 이게 지금 출퇴근을 안 한다 뿐이지 노동이랑 다를게 무엇인가 싶을 때가 많았다. 20대 중반이 넘어서도 외박은 절대 안 된다 으름장을 놓아주신 부모님 덕분에 무조건 당일치기로 한정된 시간 안에 본전을 뽑으려면 먹는 것은 최소한으로, 보는 것은 최대한으로 눈에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이랑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동 수단이 자차로 변해서 대중교통과는 다른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고, 양가에 일찍 인사드린 탓에 외박도 가능했다. 게다가 남편의 성격은 여유롭고 고요한 호수를 닮아 늘 파도치는 나를 안정시키기에 충분했다. 계획했던 A에 시간 관계상 들르지 못하면 일찍 숙소에서 쉬며 다음 날 조금 일찍 출발해 B를 가기 전 A를 거쳐가자는 식. 나이를 먹어갈수록 체력의 쿨타임이 점점 짧아지는 나로서는 이게 또 엄청난 이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휴가엔 그동안 가보지 못한 경북-경남 지역을 돌기로 했다. 코스로는 안동을 제일 먼저 선정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 숙소 때문이었다. 물론 구름처럼 푹신한 호텔 침대와 조식 서비스는 없지만, 하루쯤은 고즈넉한 곳에서 휴(休)에 집중하고 싶다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치암고택을 예약했고, 마침 출사 원고도 마무리를 해야 했기에 두말할 것 없이 바로 예약했다. 출사 여행을 계획할 때 숙소를 정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오늘 촬영한 사진들을 전송받아 편히 확인할 수 있는 와이파이와 다음날 촬영을 위해 많은 충전이 가능한 환경도 우선이나, 촬영지에서 적당한 사진을 건지지 못했을 경우 숙소 근처에서라도 추가 촬영이 가능해야 하기에. 그만큼 숙소가 멋스러운 것 역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치암고택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조선 고종 때 언암현감과 홍문관 교리를 역임했던 치암 이만현 선생의 고택이다. ‘ㅁ’ 자형 구조로 사랑채와 안채, 별채가 있는 22칸의 기와집인데 본래는 문화재인 만큼 오로지 관람 목적으로 존재했지만, 현재는 이곳을 숙소로 개방하여 운영 중이다. 내부에는 양변기를 보유한 화장실과 에어컨, 텔레비전 등 현대인이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을 문명이 준비되어 있지만 고즈넉한 외관의 모습은 19세기 후반 지어진 전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누마루에 앉아 비가 내리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차 한잔을 곁들이니 올여름 뜨겁게 고생했던 흔적들이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기와와 장독대 위에 눈이 쌓인 풍경도 멋질 것 같아서 겨울에도 한 번쯤은 다시 오고 싶어졌다. 집 하나는 참 잘 지었네.




치암고택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사랑채가 보인다. 누마루가 있는 호도재는 인기가 좋아 예약하기가 힘들었고, 예약자가 체크인하기 전 잠시 둘러봐도 좋다는 주인분의 허락 하에 잠시 앉아있었다. 23mm와 30mm 단렌즈로만 촬영했는데 고택의 전경을 담으려면 광각렌즈를 챙기는 것이 좋겠다.


사랑채 뒤쪽으로는 안채가 있다. 조금 더 조용히 쉬고 싶으면 안채를 선택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여름이라 밤에 모기가 많다고 모기향을 가져다주셨다. 역시 전자 모기향보다는 코일형이 주는 감성이 더 와닿는 편.

 

방마다 등과 발이 달려 있고, 밤에는 등을 켤 수가 있어서 더욱 운치 있었다.

 

넉살 좋은 '보리'.


툇마루 아래에는 꽃이 그려진 고무신이 놓여있다. 방마다 하나씩 있으니 이동할 때 신어도 좋다. 특히 화장실을 방 안에 보유하고 있는 객실이 몇 개 없어서 밤늦게 공용화장실에 갈 때는 필수.


우리는 별채인 상덕재에서 하루를 묵었다.




옥동손국수

경북 안동시 강변마을1길 91

054-855-2308

월~일 11:00-22:00 (매달 1, 3번째 화요일 정기 휴무)

경상도라 간이 세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옥동손국수는 국물도, 면에 배인 맛도 슴슴하다. 면을 다 건져먹은 후 밥을 말아서 김치와 함께 먹으면 궁합이 잘 맞는다. 오징어가 가득 들은 해물파전도 바삭하니 꼭 함께 드셔보시길.





2022년 8월 퇴고한 원고입니다. 일부 원고와 사진은 월간 디지털카메라매거진 온라인 구독 서비스 <출사의 맛> 코너에 연재되었습니다. 원고에 싣지 못한 B컷은 인스타그램 @play_archive_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출사의 맛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나만 알고 싶은 것은 사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알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작가에게 촬영지도 마찬가지죠. 제가 기록한 장소가 희귀한 출사지는 아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인 시선을 통해 진정한 출사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맛을 더해 줄 식당 정보는 이번 주말 출사를 계획 중인 당신을 위한 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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