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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 Mar 16. 2023

나 비행기 좋아하네?

경기 부천시 오쇠삼거리

   다섯 번째 회사에서 비자발적 퇴사를 했다. 애독자로 서점 한 코너에서 만나다 실무자가 되었던 카메라계의 몇 안 남은 전문지에서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하나의 조직으로 구성되지만, 반대로 그 조직이 곧 사람인가?라는 질문에는 늘 명확한 답을 경험하지 못했는데, 다섯 번째 회사에서야 비로소 그 답에 조금이나마 근접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됐다. 바른 조직 문화를 만드려 애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국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답지 못한 자취를 보이는 이는 항상 도처에 널려있으니.


   오래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꽤 강하게 들었던 그곳에서 나와보니 내가 일복은 많지만 회사 복은 참 없는 것으로 규정되더라. 마치 이직을 밥 먹듯이 한 것처럼 보일까 이 글의 첫머리에 굳이 숫자를 붙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번에도 또 건강보험 지역가입자가 되었으니 계산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퇴사를 하니 시간적인 여유가 확연히 늘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사진을 찍으러 다녀보겠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을 만큼 그동안 나는 촬영을 많이 다니지 못했다. 매거진 입사 전에는 주 4회 이상 출사와 외주 취재를 나갈 정도로 무언가를 찍을 일이 많았는데 고정적으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역시나 주말에는 푹 쉬자는 게 미덕 아니겠나 하는 유혹이 강했고, 주중 출근길에는 카메라를 들고나가도 꺼내야지 하는 생각 자체가 안 들었다. 가슴속 깊이 품고 다니는 사직서나 안 꺼내면 다행이지.


   이 여유가 몇 달이나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이 기회에 그동안 촬영해보지 못한 장르에 하나씩 도전이라도 해봐야 장기간 회사에 묶여있던 노동의 영혼이 한을 풀지 않겠나 싶었다. 마침 사진 덕후 3대장 중 하나인 ‘비행기’를 가까이에서 찍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몇 달 전 구매한 슈퍼줌 렌즈도 제습함에서 고이 주무시고 계시기에 장비를 챙겨 오쇠삼거리를 방문했다.  


   오쇠삼거리는 김포공항 활주로 옆 담장 주위로 난 2차선의 작은 길이다. 횡단보도는 있지만 보행자 신호등이 없고, 일반 승용차와 더불어 근처 공사장을 오가는 덤프트럭과 공항까지 가는 큰 버스들이 자주 이동하기 때문에 인도로 다닐 때에도 항상 주변을 의식해야 한다. 특히  촬영에 몰두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보도블록 밖으로 걸음을 옮길 수 있으니 혼자 가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동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 정도는 알아두자

1. 이착륙 스케줄 확인

대부분 공항사 홈페이지는 모든 비행기의 이착륙 스케줄을 투명하게 제공한다. 대략 어느 시간대에 몰리는지 알아둔다면 촬영 포인트에서 몇 시간씩 대기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는 거의 5분에 한 대씩 이착륙을 하는데 활주로의 방향만 맞는다면 오쇠삼거리에서만 최소 10대 이상의 비행기를 촬영할 수 있다.


2. 바람의 방향과 비행기의 활주로 방향 확인

비행기 추적 앱인 ‘Flightrader24’는 실시간으로 전 세계 비행기를 추적한다. 위치와 경로뿐만 아니라 속도, 고도, 기체 외관 사진까지 제공하는데 앱 내 유료결제를 한다면 조금 더 다양하고 세세한 정보를 알 수 있어서 평범하지 않은 위치와 구도에서 촬영이 가능하다. 이 장르에 처음 도전하는 이는 무료버전으로도 충분하다. 몇 시간 뒤 바람의 예측 방향을 볼 수 있는 기상 앱 ‘Windy’도 같이 체크하면 좋다. 비행기는 바람의 역방향으로 이착륙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서 하늘도 예쁘게 담긴다. 오쇠동 방향 활주로를 착륙으로 쓰는 날이라면 노을과 함께 더 멋진 컷을 담을 수 있을 듯하다.


분명 전날 밤까지만 해도 오쇠삼거리 쪽 활주로를 랜딩으로 썼다는 것을 앱을 통해 확인했는데 다음날이 되니 보딩으로 바뀐 상황. 착륙 시에는 비행기가 낮게 날아서 기체가 크게 다가오지만 이륙은 각도 자체가 높게 날기 때문에 촬영 포인트에서 70mm까지 당겨도 이렇게 작게 보인다.  


처음 한 대는 진에어였는데 정확한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 찍지 않고 그냥 보내고 두 번째부터는 삼거리에서 조금 더 위쪽으로 걸어 올라가 비행기를 찍기 시작했다. 이번엔 포커스를 동체 추적으로 바꾸고 연사로 정확하게 담은 컷. 나 비행기 좋아하네?


안녕 제주항공.


멀리 보이는 대한항공 건물. 비행기 이착륙을 기다리며 주변 건물을 찍는 것은 허용이지만 공항사와 항공사별로 정해둔 보안 기준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모 항공 촬영 커뮤니티에는 사다리에 올라가 비행기를 찍다 항공사 건물 창 안쪽까지 사진에 담기는 바람에 법적으로 제재를 받은 사례도 있다. (애초에 왜 사다리를...)




아쉬운 마음에 김포공항 내 전망대로 이동했다. 전망대에는 철조망이 사방으로 있어서 망원으로 당겨야 이렇게 비행기들이 잘 보인다.


승객들이 다 내리고 다음 이륙을 위해 이곳저곳을 점검하는 진에어


대한항공은 언제 봐도 예쁘다.




김포국제공항

서울특별시 강서구 하늘길 38

02-1661-2626

이미지 출처 : 한국공항공사

오쇠삼거리에는 식당도, 편의점도 없다. 오죽하면 오쇠삼거리 정류장에서 하차할 때 버스 기사님이 내리는 곳이 여기가 맞냐고 여러 번 물었을까. 간단한 음료는 미리 준비하고 식사는 김포공항 내 식당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원고에 싣지 못한 B컷은 인스타그램 @play_archive_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출사의 맛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나만 알고 싶은 것은 사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알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작가에게 촬영지도 마찬가지죠. 제가 기록한 장소가 희귀한 출사지는 아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인 시선을 통해 진정한 출사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맛을 더해 줄 식당 정보는 이번 주말 출사를 계획 중인 당신을 위한 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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