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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Mar 18. 2021

겉만 보고 알 순 없으니까

싱가포르 | 두리안

계속 피하게 되는 과일이 하나 있다. 아시아 여행을 하게 되면  만나는 ‘두리안이다. 처음 접했을  강렬한 냄새에 질색하며 입에 대지도 않았다. 맛본 적이 없으니  맛을   없고, 알고 싶지 않은 과일이었다.


“두리안 안 좋아해? 엄청 맛있는데. 우리 먹으러 가자!”


싱가포르 출장을 함께 간 직장 상사가 말했다. 그녀는 회사에서 꽤 어려워하는 이가 많았다. 본부가 달라 부딪칠 일은 없었지만, 그녀의 명성은 익히 들었다. 그녀와 함께 콘퍼런스에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몇몇 동료들은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그녀의 입에서 두리안이 나왔다.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사실은 전 그거 싫어하는데, 혼자 다녀오시겠어요?라고 할 용기는 내게 없으니까. 이번 기회에 한 번 도전해보지 뭐,


숙소 근처 길가엔 과일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즐비했다. 유독 사람들이 많이 앉은, 가게를 찾은 유명인들과 사진을 붙여 둔 맛집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와 함께 뾰족 뾰족 가시가 돋은, 단단한 두리안들이 쌓인 매대를 살폈다. <King of the King>이라고 쓰인 팻말이 눈에 띈다.


“익을수록 색이 노랗고 맛있어. 저거 잘 익은 거 같은데?”


단단한 껍질을 가진 두리안을 골라 그 자리에서 껍질을 깨서 가져갈 수 있지만, 그녀는 두리안의 노란 속을 랩으로 포장한 것을 골랐다. 우리는 포장마차의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한쪽에는 일회용 비닐장갑이 놓여있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두리안을 먹는데, 비닐장갑이 필요해요?”

“비닐장갑을 끼고 먹어야 해. 손에 냄새가 배일 수 있거든. 이거 맛있겠다. 먹어봐.”


그녀가 추천해준 두리안 한 조각을 손에 들었다. 가까이 대자 특유의 냄새가 났다. 어라, 그런데 예전만큼 강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입에 넣어본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십 년 전 처음 두리안을 만났을 때와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 먹어보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요? 살짝 단 맛이 느껴져요.”

“그렇지? 이 맛에 한 번 빠지면 멈출 수 없다니까.”


해사하게 웃으며 두리안을 먹는 그녀를 보며 '본부장님, 이런 모습도 있으시네.’ 생각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두리안 앞에 어린아이처럼 환한 표정을 짓는 이를 보고 있으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를 마주하지 않은 채, 지금껏 다른 이의 말을 들으며 편견을 가진 게 부끄러웠다. 나도 모르게 쓰고 있던 마음의 선글라스는 그녀의 빛이 아닌 어둠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싱가포르 출장을 마지막으로 몇 달 후 퇴사를 하게 됐다. 나는 그녀로부터 사내 메일을 받았다. ‘아쉽다고, 결혼과 해외에서의 삶을 축복한다고.’ 그 메일 속에서, 환하게 웃던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알까, 두리안을 보면 당신이 생각난다는 걸, 겉으로 뾰족하고 단단하지만, 속은 부드러웠던 두리안처럼 어떤 이의 겉모습과 떠도는 소문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싱가포르의 작은 포장마차에서 배웠다.


singapore _ 뾰족한 겉과 달리 부드러운 두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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