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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Apr 21. 2021

휴가가 뭐라고

베트남 무이네 | 스프링롤

여러 번 출장의 파트너였던 둥둥이 말했다. 


“언니, 베트남에 사막이 있대요.” 



그녀가 보여준 사진 속 베트남은 내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 두바이의 모습 같았다. 늘 업무와 출장으로 여름이 훌쩍 지나서야 휴가를 냈지만, 그 해엔 운이 좋았다. 7월 중순 우린 베트남 호찌민에 도착했다. 



여행을 떠나며 우리는 책을 한 권씩 챙겼다. <100만 번 산 고양이>라는 그림책 작가로 유명한 사노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와 <죽는 게 뭐라고>였다. 목적지인 무이네로 가는 버스, 담담하고 솔직한 그녀의 글을 잠시 읽는다.  일흔을 앞두고 덜컥 암 선고를 받은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규어를 한 대 뽑았다. 담담하고 솔직한 글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우리도 참 휴가가 뭐라고, 이제껏 남들 다 가는 여름에 떠나지 못했을까. 일 년의 1/4은 출장을 가면서 또 비행기를 타고 싶냐고 엄마는 물었지만, 그래도 휴가는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올 수 있으니까. 휴가든 출장이든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하다.


저녁이 되어 도착한 무이네의 숙소, 근처 여행사에서 사막투어를 찾아 예약했다. 7월의 베트남의 여름은 덥고 습했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이 곳에서 흘리는 땀은 개운한 기분이었다. 대체 휴가가 뭐라고, 우리의 마음은 이리 너그러워질 수 있는지. 시장에서 베트남 전통모자를 하나씩 사서 썼다. 머리도 양갈래로 땄다. 아, 휴가가 뭐라고. 한국에선 하지 못할 용기가 이리 샘솟는 건지! 무이네의 사막은 아름다웠다. 샌들을 손에 들고 걸을 때마다, 발가락 사이로 나오는 모래알들이, 여름 햇살의 온기를 품은 모래가 기분 좋게 따뜻했다. 


베트남 무이네의 사막 


“아, 정말 너무 좋다. 신난다.” 

“벌써 아쉬워요. 또 오고 싶을 거 같아.” 



모래 언덕에 앉아 해가 지는 광경을 본다. 땀으로 젖었던 머리칼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다시 돌아갈 한국에서 끈적이는 여름을 견딜 기운을 마음껏 받는다. 여행 중 우리는 요리 클래스를 예약했다. ‘베트남의 맛 A 코스’ 직접 만들고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코스였다. 메뉴는 치킨카레, 소고기 볶음 쌀국수, 베트남 스프링롤, 연유를 넣은 코코넛 젤리였다. 



“어서 오세요. 앞치마를 하고 저와 함께 만들어요.” 



우리 두 사람을 위한 요리 클래스, 야외에 놓인 탁자엔 재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기대했던 건 스프링 롤이었다. 준비된 채소를 썰고, 익힌 새우와 얇은 당면을 살짝 데친 라이스페이퍼에 올렸다. 양 끝을 안으로 넣고, 김밥을 말듯 조심스레 말았다. 선생님이 준 땅콩소스에 푹 찍어 맛을 본다. 살짝 쫄깃한 라이스페이퍼, 신선한 속재료, 고소한 땅콩소스가 적당히 가벼우면서 건강한 맛이다. 직접 만든 손 맛에 더위도 잊었다. 세상에. 진짜 여름휴가의 맛이었어. 이제, 나도 남들 쉴 때 휴가 갈래. 일이 뭐라고. 출장이 뭐라고. 흥. 



                                Mui Ne, Vietnam _ 요리 클래스의 스프링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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