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 코카콜라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 아이티가 한국에 알려진 건 2010년 1월의 대지진이었다. 강한 지진은 30초간 아이티 전역을 흔들었고 최대 31만 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 직후 콜레라가 휩쓸었고 폐허가 된 그 곳에 전 세계의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난 후 현장을 한 번 더 볼 수 있다는 건 국제구호개발기구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허락된 책임과 같았다.
대지진 이후 5년이 되던 해 여름, 인천에서 뉴욕을 거쳐 아이티의 수도 포르투 프랭스로 가는 작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로 꽉 찬 비행기에서 승무원의 케이터링이 시작되었고, 답답한 마음에 얼음잔과 코카콜라를 주문했다. 잠시 후 그녀가 준 코카콜라 캔에는 share a coke with 'Dreamer' 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당시 코카콜라의 스토리텔링 에디션이었는데 한글이 아닌 영어 표기는 처음이었다. 왠지, 아이티에서 만나게 될 이들을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정말 집들이 빽빽하게 있네요."
"여긴 주택 문제가 심각해요. 지진 이후에 더 심해진 거 같아요."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며 아이티 사무소의 직원이 말했다. 지진 이후 물가는 상승했고, 사람들의 불안도 높아졌다. 국제사회의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었지만 재난의 흔적을 깨끗하게 씻어낼 순 없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미래를 꿈꾸는 이들을 만났다. 지진 이전엔 관광지로 유명했던 천혜의 절경,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나라. 재난으로 학업과 일할 기회를 잃은 이들을 위한 직업 교육을 진행했고, 이 훈련을 마친 이들은 지역의 호텔에 취업하여 앞으로 더 나아질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게 간절했던 것 같아요. 배운 기술로 일자리도 구하게 되었고요."
"많은 걸 잃었지만, 또 되찾을 기회를 주신 신께 감사합니다."
과거의 재난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며 눈을 반짝이는 이들을 보며, 감사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보고서 한 줄, 사진 한 장으로 그 날의 참혹함을 감히 가늠해 보지만, 직접 겪기 전까지 그 일에 대하여 내가 완벽하게 알 수 있을까,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신께 감사할 수 있었을까. 다양한 환경, 이야기를 가진 이들을 만나고 숙소에 돌아오면 마음이 먹먹했다. 식사 비용은 정해진 예산과 달리 턱없이 비쌌고, 동료와 나는 감자튀김 하나와 코카콜라 두 캔을 시켜서 나눠 먹었다. 종일 더위에 지쳐있기도 했으니까, 주문한 캔 콜라엔 'Dreamer' 라는 글씨가 또 쓰여 있었다. 꿈을 꾼다는 건 어떤 걸까, 지금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고 그 안에서 감사함을 찾는 것,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은 그 안에서 멈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찰나의 기쁨을 알아가는 것, 내가 만난 아이티의 사람들이 진정한 'Dreamer'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