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타닥타닥, 새벽녘부터 깨어 잠도 마저 자지 않고 뛰어다니고 있는 아들의 발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오지만 몸이 노곤해서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간밤에 늦게 신랑이 귀가했다가 다시 출근한 것 같긴 한데 이미 자취가 없으니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질 않습니다. 혼자 놀기에 지친 아들이 급기야 안방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제야 저는 몸을 일으켜 아들을 맞이해 줍니다.
‘잘 잤어? 아휴, 그새 온통 어질러 놨구나.’
삽시간에 온갖 장난감과 책을 거실에 늘어놓는 건 아들의 특기입니다. 치우면서 놀라고 해도 듣는 둥 마는 둥은 기본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거실이 번잡해집니다. 당장 아들 등원과 제 출근이 급하니 거실 정리는 뒤로 미루고 아들 식판과 수저통, 양치컵부터 챙깁니다.
월요일과 수요일은 체육복이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원복을 입힙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부터 생각을 잘 해야 틀리지 않게 옷을 입힐 수 있습니다. 화요일이니 원복을 가져와 입기 귀찮다고 꾸물대는 아들을 채근해가며 겨우 입혔습니다. 아...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다례수업이 있는 날이라 한복을 입히고 원복은 보조가방에 넣어 챙겨 보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힘들게 입힌 원복을 다시 벗겨서, 서랍장 깊숙이 있던 한복을 꺼내다 입히고 원복을 따로 챙겼습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도 챙겨줄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유치원에 보내도 만만치 않게 손이 많이 갑니다. 요리 수업 있을 때는 앞치마와 머릿수건, 산에 갈 때는 물통과 모기퇴치제와 모자 및 스카프, 물놀이 할 때는 래시가드에 수영모자, 준비물 종류도 천차만별입니다. 주말에는 동화책 읽히고 독후감 숙제를 봐주어야 하고 평소에는 영어 교재 CD를 틀어주어야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돌봐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정신이 없습니다.
저 혼자 아들 뒤치다꺼리 한다고 바쁠 때 신랑은 대부분 곁에 없습니다. 설령 신랑이 집에 있는 주말이라도 제가 바쁜 게 별로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아들은 여느 때와 같이 새벽녘에 깨어서 저랑 놀다가, 저랑 숙제하다가, 제 손에 이끌려 목욕을 하러 가고 제가 갈아입힌 옷을 입고 제가 재우면 꿈나라로 갈 테니까요.
신랑은 보통 침대에서 꿈지럭거리다가, 아침식사 다 만들어놓고 깨우면 그제야 겨우 식사하러 오고, 제가 만든 음식 맛있다는 소리는커녕 식사 끝난 뒤엔 바로 발코니 안락의자에 눕듯이 기댑니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애인이라도 되는 양 스마트폰은 항시 챙깁니다. 특별히 재미난 게 없어도 걸핏하면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심지어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그러고 있어서 가끔 제가 엄청 싫은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젖은 수건 또 화장실에 그냥 놨어? 냄새 난다고!’
제 말을 듣기는 듣는 건지, 몇 번을 얘기해도 고치질 않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벌레 끓으니까 분리해서 버리라고 해도 은근슬쩍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과일 껍질 같은 건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니까 일반쓰레기에 버려야 한다고 해도 음식물 쓰레기에 섞어놓고, 빨래 널어달라고 부탁하면 세탁조에서 구겨진 상태 그대로 건조대에 얹어놓습니다. 마음 같아선 아들도 신랑도 둘 다 비키라고 하고 제가 청소 다 해버리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그런 생활이 당연해질 거라고 누군가 조언한 바 있어 그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왜 나만 맨날 피곤하고 힘든거야? 너희도 날 좀 도와줘. 그러면 내가 소원이 없겠다. 마음 속으로 되뇌곤 했습니다. 그럴 때는 제가 세상 천지에서 가장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습니다. 저도 집안일 좋아하지 않는데, 저도 제 준비물 챙겨야 하는데, 자기계발 하고 싶은데, 아들 탓에 혹은 남편 탓에 금쪽같은 자유시간이 자꾸 없어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그랬습니다. 사기범들의 전화를 받고, 한 달에 걸쳐 서서히 3억이라는 돈을 잃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지난 주말에 큰 맘 먹고 방에 있는 가구 위치도 바꾸고, 책장의 책들도 정리하고 집 청소를 말끔하게 했습니다. 제 소원대로 신랑과 아들이 함께 열심히 청소를 했습니다. 몰라보게 깨끗해진 집 안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습니다. 너무나 예쁜 이 집, 우리 셋이 아웅다웅 안달복달하는 이 집, 여기서 우린 얼마나 오래 더 살 수 있을까요?
챙기라고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 지긋지긋하던 유치원에, 이제는 아들을 보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유치원은 집과 학교에서 가깝지만 원비가 제법 비싼데, 멀리 떨어져 있는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라 사립이라도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지른 일 탓에 아들만 괜히 정든 친구들과 선생님과 억지로 헤어지게 생겼습니다. 피해금이 대부분 대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유치원비 이상의 돈이 매달 이자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아들을 유치원에 보낼 수 있었던 게 그동안 얼마나 좋았던 건지 이제 알았습니다.
신랑의 볼에 살이 없어 턱선이 그대로 보입니다. 저를 밤새 다독이고 격려하면서, 한편으로 집을 팔지 않고도 채무를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느라 요즘 잠을 잘 못 잡니다. 저의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를 담은 기사가 인터넷 신문에 났는데, 그야말로 댓글창엔 악플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멍청해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냐, 돈도 많다, 여자라 그렇다, 치매 노인이냐, 소설 쓰냐, 너무도 쉽게 저를 욕하고 짓밟았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순간에도 신랑은 저를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과 결혼했던 건지, 그 감사함을 이제 알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범죄는 당하는 사람이 등신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최근 그 말의 속뜻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이토록 못난 사람 취급을 받고 있는 동안 저와 그 외의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에게서 피눈물을 쏟게 한 사람들은 똑똑하고 영리하다고 그들의 윗사람에게 칭찬받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제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똑똑한’ 사람이 그런 사람들이고, ‘멍청한’ 사람이 저같은 사람들이라면, 저는 계속 멍청하게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토록 멍청한 저라도 감싸주고 아껴주는 가족들의 사랑이, 똑똑하다는 그들의 몹쓸 짓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