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게 심호흡을 권하셨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이건 요즘 베스트셀러로 손꼽히는 책의 제목입니다. 서점 진열대에 놓인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저는 바로 이거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공감을 확 살 수 있는 이런 제목을 도대체 어떻게 떠올렸을까요. 우리나라는 특히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피곤에 찌들어 있어서, 모르긴 해도 다들 한 번쯤은 열심히 살아서 뭐하나, 하고 한숨 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 만큼 열심히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사업을 하셨고, 사업에 부침이 있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집이 넘어갈 지도 모른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났습니다. 장학금을 타기 위해서 공부를 했고, 문제집을 살 문화상품권을 마련하고 싶어서 대회에 나갔고, 외식비를 줄이기 위해서 밖에 있다가도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나갔습니다. 아르바이트도 두 세 개씩 하고, 악착같이 벌어서 결혼을 했습니다. 양가 부모님께서 결혼에 재정적 도움을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대부분 스스로 벌어서 결혼식 비용을 치른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랑스럽고 떳떳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더 나은 전셋집으로 가기 위해 또 열심히 살았습니다. 에어컨 설치하려면 벽에 구멍 뚫는 비용을 내야 한다는 설치기사님 말씀을 듣고, 가뜩이나 전셋집 살고 있는데 그 비용까지 굳이 뭘 내나 하는 마음에 에어컨도 없이 폭염을 버텼습니다. 냉장고 안에 냉각매트를 넣어두었다가, 열대야가 찾아오면 침대에 펼쳐놓고 으악 소리 나게 차가운 그 위에서 더위를 식히며 잤습니다. 꼭대기 층이라 열기가 천장으로부터 그대로 내려와 정말 더웠지만, 방수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장마철 내내 방바닥에 빗물이 흥건하게 고였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하면서 지냈습니다.
좀 살 만해졌다고 여길 때쯤 임신을 하니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자동차를 사지 않았더니, 버스 타고 출퇴근할 때마다 멀미가 너무 심했습니다. 하루는 출근길에 아무 정류장에나 급하게 내려 길바닥에 바로 토했습니다. 핸드백에 들어 있던 휴지로 제가 토한 것들을 닦아서 쓰레기통에 버리러 가는데, 멀찍이 선 사람들이 저를 마치 더럽고 끔찍한 벌레라도 보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유산하기 전까지는, 입덧도 참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외근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임신했는데 외근 나가도 괜찮겠냐고, 딱 한 사람만 저를 걱정해 주었습니다. 다들 제 업무 대체해주기 싫어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면서 그냥 외근을 나갔습니다. 바람이 쌩쌩 불어 좀 으슬으슬 춥다, 라는 생각은 했지만 내내 바깥에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 갑자기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심해지면서 걷기가 어려워져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임신하면 감기약을 먹을 수 없습니다. 기침이 너무 심해서 밤새 잠을 못 잘 지경인데도, 울면서 약국 가서 제발 약 좀 달라고 하면 임신부에게는 안 된다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누군가 그때 ‘산부인과 가서 처방받으시면 돼요,’라고 알려줬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그저 약사는 ‘임신부가 감기약 먹으면 안 좋으니 버티세요’라고만 말해주었습니다.
두 달간 기침을 계속했습니다. 뱃속의 아이는 꾸물꾸물 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저의 기침이 잦아든 어느 날, 아이는 태동을 멈췄습니다. 병원에서는 6개월이나 된 아이의 심장이 갑자기 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아이가 너무 커서, 이미 숨을 거둔 아이지만 유도분만으로 낳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로 제가 입원해야 될 것 같다고 직장에 전하자, 상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체해주시는 분들께 민폐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말씀 드리고 병원 가세요.’ 보험사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산수술 증빙서류 제출하세요.’
하나뿐인 제 아들은 제가 세 번째 임신으로 얻은 아이입니다. 아직 채무가 남은, 그나마 신랑 명의로 되어 있는 우리집은 오롯이 저와 신랑이 열심히 벌어서 겨우 마련한 집입니다. 누가 저더러 애쓰면서 살라고 한 건 아니지만, 저는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애쓰지 않았다면 이만큼이라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았는데, 남에게 피해 끼친 일 없이 성실하게 하루하루 쌓아왔는데, 하루아침에 그 모든 노력을 다 날릴지도 모를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리고 피해의 원인은 ‘신용이 좋고, 아둔하고, 여자인’ 저라고 합니다. 남의 고통 따위 신경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궁리하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마음으로 사기를 친 사람들 탓이 아니라고 합니다. 범죄인의 편을 드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 걸 보면, 이래서 착실하게 사는 건 매력이 없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열심히 살면 바보가 됩니다. 그리고 저도 더 이상 열심히 살기 싫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절대로 열심히 살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논리는 맞지가 않습니다. ‘신상필벌’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회적 구조가 문제인 것이지, 제가 지금부터 열심히 살지 않겠다고 혼자 다짐해봤자 이미 잃어버린 돈은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구조 탓에 답답하고 억울해서 미치겠습니다. 그걸 바꾸기 위해서 온갖 시도를 다 해볼 것입니다. 하지만 마냥 그것만 기다리기에는 당장 눈앞에 있는 채무가 걱정입니다. 일단 하고 있는 일이라도 계속 열심히 해야 월급이 나오고, 그래야 이자라도 감당합니다.
저는 ‘열심히 살아야 복이 와요’같은 동화 속 이야기는 믿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일부러 나태해지려고 하진 않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실은 다른 사람들도 한탄조로 ‘이제 열심히 안 살거야’라고 하는 것이지, 그들 모두가 실제 생활에서 나태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자의적으로나 타의적으로나 결국엔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본인의 모습에 보람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도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다만 이번엔 조금 느긋하게 살아보겠습니다. 치열하게 사느라 돌아보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을 한 번이라도 다시 보고, 이 방향으로 사는 것이 맞나 잠시 고민도 해보라고 누군가가 저를 뒤로 잡아당겼나 봅니다.
예기치 않게 늦춰진 삶의 박자에, 기꺼이 몸을 맡겨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