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나보다 어린데 어린 사람 같지 않네
처음 만나서 나이부터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왜 이게 궁금하지'란 생각을 하면서도 뻣뻣하게 되묻진 못하고 대답한다. 그러고 나면 정작 상대방의 나이는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대화가 이어질 때, 마음 한 구석에 무언가 밑진 느낌이 든다. 말하면서 조심해야 할 것 같고 실수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은 내 탓인가 싶다. 그래서인지 이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았다. 일적인 관계임에도 처음부터 호형호제하며 상하관계를 유도하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생긴다. 내가 집안 전체에서 첫째로 자랐기 때문에 형과 관계를 잘 못 맺는가도 생각해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좋아하고 종종 만나는 분들은 여럿 있다. 그보다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는 관계 설정에 거부감이 생기는 듯하다.
이런 내가 나보다 나이 많은 분을 팀원으로 함께 해야 할 때가 찾아왔다. 인원이 많지 않은 회사에서 팀장으로 일하면 이런 일이 금방 찾아온다. 나보다 먼저 회사에 들어온 분을 팀원으로 함께 해야 하니 묘한 긴장감이 생겼다. 당시 나보다 열 살 넘게 많으신 분과 팀빌딩을 해야 했다. 직급도 높았다. 이 때문에 사전 논의 과정에서 사장님께 손사래를 쳤는데 팀장이란 역할만 가질 뿐 서로 협력해서 잘해보는 것으로 결론짓고 시작했다. 내가 아이템에 대한 사업을 기획한 후 관리하면, 그분이 실행을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 분은 결국 한 달여 만에 팀을 나가 나보다 나이 차가 덜 나는 팀장의 부서로 옮기셨다. 직전에 연봉 계약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며 생긴 이견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연장자에게 너무 조심스러웠다. 매사에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팀원이지만 지시하기보다 요청한다는 의미로 존대를 사용했다. 이 방식은 일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긍정적이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논점을 건들지 못하게 했다. 팀장은 무언가를 요청하고 팀원은 확인을 받는 식의 역학관계를 피할 수 없었다. 이 부분에서 연장자가 느낄 수 있는 부담감에 대해 대화해보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쉬운 대목이다. 막상 실무로 들어가니 그런 점이 점점 많아졌다. 그분은 좀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과 남몰래 얘기를 나누고는 일방적으로 전출을 통보하고 옮기셨다. 한 팀으로 일하기 전에 잠시 손발을 맞출 때 능력 있다 여겼던 분인데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조금 더 솔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후 얼마 뒤 비슷한 연배의 인력을 신규로 채용하게 됐다. 서류 검토부터 면접, 연봉 협상까지 전체 과정을 진행하며 얘기를 나누어보니 능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분이란 확신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에 앞서 따로 양해를 구하고 시작했다. 조직 사정에 따라 나이가 어린 사람이 팀장을 맡게 됐는데, 많이 도와주시길 부탁드린다 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 뒤로는 주로 일에 관한 화제로만 대화를 나눴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돌출하는 문제에 대해 하루에도 몇 번씩 토론하고 해결하기를 반복했다.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그분께 감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매번 직함과 함께 존댓말을 해주신 덕분에 편히 말할 수 있었다.
함께 일하게 된 이유에 집중한 뒤로는 연장자에 대한 어려움이 대부분 사라졌다. 분명 부족하고 모자란 점이 보이셨을 것이다. 그 뒤로도 여러 연장자 분을 채용하여 함께 일하게 됐는데, 적어도 못 견뎌서 먼저 나가신 분은 함께 일한 이후로 없었다. 간혹 나이가 비슷한 연장자 팀원들이 서로 모여, 업무 할 때보다 좀 더 편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봤다. 때로 그분들과 친구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때가 있었다. 그러나 업무 중에 다른 불편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 선을 넘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썼다. 내게 맡겨진 배역에 충실했다. 팀으로 해결할 문제들에 집중하며 함께 성취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더 많이 누리기 원했다. 이 과정 덕분에 나이 차를 넘어 한 마음으로 묶일 수 있었다.
함께 할 수 있는 이유와 즐거움을 찾으니
나이는 더 이상 벽이 되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