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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Aug 13. 2020

일 잘하는 방법을 찾으려면

머리가 쥐 날 정도로 고민하고 있다면

일할 때 머리가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내가 그 신앙의 소유자다. 전략, 기획, 디자인, 분석 같은 일을 많이 한 영향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 파고 들어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전 조사를 해서 의견을 정리해 보고 하는 일을 자주 했다. 전후 맥락을 따져 나름대로 가설을 세워 검증했다. 여러 사례를 근거로 맞고 틀릴 것을 가늠해 보완한다. 생길 만한 변수에 대비해 대응할 수 있는 시나리오도 세워본다. 보험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안전장치를 만든다. 계획이 촘촘할수록 일을 잘한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만 해서 실제 이뤄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작은 조직에서 일해보니 더욱 그랬다. 직접 몸을 써야만 했다. 아름답게 정리된 지시만으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팀원이 아니라 팀장이 돼도 마찬가지였다. 본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에 달려들어야 했다. 판매업을 한다면 직접 박스에 테이프를 붙이며 포장하고, 지게차를 운전해 재고도 옮기고, 고객 진상도 해결해야 한다. 모두 몸의 영역이다. 실제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다. 먹어보지 않은 과일 맛을 표현하려는 듯 현장 모르는 계획을 고민했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책임의 당사자가 되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 마치 또 다른 인격이 있는 것 같다. 막상 경기장에 들어서면 달성해야 할 목표에 압도돼 '평소에 잘하고 익숙한 것'에만 몰두한다. 일례로 지난 회사에서 무슨 사업을 기획해보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말 그대로 계획만 열심히 세웠다. 마치 야구할 때,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기 전에 투구폼을 점검하고 적팀의 전력 분석만 매진하는 식이다. 정작 공 던지기는 한참 뒤에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어설픈 행동이었다. 공을 만지지 않은 채 마운드에 오른 투수의 결말은 뻔할 수밖에.


신기하게도 스스로 뜻을 세워 사업을 시작한 요즘도 비슷한 실수를 하고 있었다. 시작하기에 앞서 고민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신중하고 꼼꼼히 검토해 계획을 세우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물론 이것도 가치가 없지 않겠다. 그러나 내가 손발을 움직이기 전까지 실질적인 부분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집을 지었다가 부수기를 반복하니 세월만 갔다. 이러다 '성공 방정식'에 답을 찾은 듯 느껴 조금 해보다 막상 예상과 다르면 금방 시무룩해진다. 그럼 또다시 계획을 돌아본다. 이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무엇이 진짜 일인가'를 다시 정의하기로 했다. 일의 알맹이는 사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다. 어떤 절차를 밟았고 무엇을 느끼며 배웠는지 아는 것은 인생 전체의 관점에서는 중요하다. 그러나 일은 그보다 시야를 좁힐 필요가 있다. 바라는 결과를 만드는 과정을 찾는 게 핵심이다. '성취의 행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면, 일적인 측면에서 '헤매는 중'인 것이다. 분명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멈춰서 고민만 한다면 찾을 방법이 없다. 차라리 헤매더라도 한 발을 떼야만 가려는 곳이 구덩이인지 목적지인지 알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일이든 시작한 지 오래될수록 일단 시도해보라고 조언하게 된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한다. 어떤 시점에서든 해야 할 일을 이리저리 재어보고 골똘히 궁리하고 있는 것을 자각했다면 당장 멈추려고 애쓴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 이레로 지금까지 고민해 정한 방침을 따른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미루지 않고 해 버린다. 이 선택이 틀릴까 두려워하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게 바람직했다. 경험이 늘수록 계획도 정밀해지고 시도의 정확도는 올라갈 것이다. 덕분에 이전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됐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생각하지 않고 할 것을
당장 찾아 실천하려 합니다.
그 와중에 더 나은 생각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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