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hite whale Apr 04. 2020

고마웠던 사람을 닮으려면

그 분의 말을 잘 기억해보세요

누군가가 좋은 인상으로 마음에 남으면 호감이 가게 된다. 내게 특별히 해준 것이 없어도 상대의 모든 행동이 긍정적으로 보인다. 어떤 부탁을 하기도 받기도 부담스럽지 않다. 일을 하면서 이런 사람을 만난다면 행운이 찾아왔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일할 때 서로 마음이 맞는 느낌이 있다면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손발이 어지러워질 일이 없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화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즐겁다. 성과까지 잘 나오면 더할 나위없이 좋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게 더 중요한지는 고마운 사람을 만나면 선명히 알게 된다.


내 기억에 가장 또렷이 남은 고마운 분은 나보다 10살 가까이 나이가 많은 팀원이셨다. 당시 새롭게 팀을 만들면서 생산을 담당할 전문가를 구인했다. 그분은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 그 전까지 지원자 몇 명을 먼저 만났는데 모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분을 면접볼 차례가 됐을 때 남은 면접 대상자가 1명밖에 없어 속이 탔었다. 자가용이 없으면 출퇴근이 불편한 회사 위치 탓인지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그분은 부끄러움이 많으셨으나 진솔하게 답변하셨다. 면접 보러 회사를 들어올 때 가슴이 뛰었다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것은 진심이었다.


오래 지켜본 바로 그분은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 애쓰셨다. 한참 어린 팀장에게 업무에 대한 지시를 시시콜콜 받으며 일하는 것이 어려울 법한데 내색 한번 하신 적이 없다. 꼬박꼬박 직함과 함께 존댓말을 쓰셨는데 회사를 떠나는 마지막 날에도 그러셨다. 그래서인지 평소 그 분의 이미지는 팀장을 존중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업무 중 고객을 통해 발견된 문제나 품질 이슈를 그분께 최대한 빨리 고쳐달라고 자주 요청했었다. 이런 부분에 대해 따져보고 토론하고, 시도했는데 잘 안되면 다시 고치길 반복했던 순간들이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성실한 면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내가 지나가는 말처럼 요청했던 것을 잊지 않고 있다가 퇴근 후에라도 짧게 얘기해주셔서 감사했다. 회사가 전체적으로 칼퇴근을 하는 분위기여서 되도록 정해진 시간 이후 남아서 일을 더 하도록 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른 일로 바빠 미처 못 챙겼던 부분을 기억해준 것은 보기 드문 꼼꼼함이었다. 시간을 정해 어떤 일을 요청하면 최대한 맞추시고, 어려우면 미리 말해주시니 믿고 맡길 수 있는 영역이 많아졌다. 이런 분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분이 없었다면 하려 했던 어떤 일도 완성할 수 없었다.


고마웠던 분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분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편하게 느끼는 사람은 어떤 구색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타인에게 그런 점을 본받아 행동했는지는 모를 때가 많다. 다른 사람이 굳이 와서 고맙다고 하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다. 그분은 내가 고마워할 줄 알고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평소 갖고 있는 성품대로 행동했던 것이다. 그분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저 다른 사람이 일을 잘 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일했다. 그럼에도 회사의 모든 사람이 그분의 장점과 성과를 알았고 신뢰하기 시작했다.


내가 고마웠던 분을 거울 삼아 살 수는 없을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변하지 않았던 그분의 말투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말은 생각과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마음에 있는 생각이 말로 나오는 법이다. 만약 겉과 속이 달랐다면 언젠가 드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결 같았던 말의 태도는 배우고픈 금도다. 그분에 대해 좋은 기억으로 남은 여러 행동이 그 분의 진심을 닮았을 것이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렇게 마음이 드러나는 삶을 살고 싶다. 그 분의 향기가 내게 배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고마웠던 사람에게는 오래 남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 덕분입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말을 남기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전 07화 내가 원하는 쪽으로 대화를 이끄는 전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