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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May 09. 2020

따르기보다 이끄는 사람이 되려면

반면교사가 아닌 정면교사가 될 수는 없을까

'그 상사 힘들었어'라고 할 만한 기억이 있다. 이미 마음속에서 해소됐고 한편 그분의 인격을 존중하기에 내가 느낀 내용 위주로 나눠볼까 한다. 상급자 앞에 서면 나는 유난히 기가 죽었다. 전화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막 자대에 배치받은 신병처럼 긴장하고 얼어 있었다. 그분을 만날 때마다 내가 한 일을 보고하고 이런저런 지적을 받아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말에는 때로 욕설이 섞여 있었다. 대부분은 듣고 흘렸지만 내용에 상관없이 늘 무언가에 묶이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마음속에 무언가 뚝 부러진 것을 느꼈을 때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런 일을 겪은 후 나를 돌아보다 그분의 행동에서 어떤 교훈을 발견했다. 나를 워낙 힘들게 했던 경험이기에 구겨서 버릴 쓰레기로 여길 것이 아니었다. 그 상사에게서 내 인생을 비출 거울 조각을 찾은 것이다. 그분 앞에서 늘 나답지 않았다. 기가 꺾여 나도 모르게 실수를 했고 그것을 고치려다 또 다른 실수를 하게 됐다. 연거푸 그런 일이 생기니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인가도 싶었다. 그러나 퇴사 후 바로 다음 날부터 상태가 회복됐다. 사안을 분별하고 사리에 맞게 행동하는 총명함이 돌아왔다. 사람의 영향을 받은 탓에 내가 잠시 변했던 것이었다.


부정적인 영향력을 받으면 내 역량이 줄어들었다. 내가 원래 나약하거나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윗사람이 만약 지적과 재치를 적절히 섞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또 배우고 싶은 말과 닮고 싶은 행동을 하는 리더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것이 없던 상사는 제대로 이끌지 못했고 나도 따르지 못했다. 어쨌든 어떨 때 나답게 일할 수 있는지 덕분에 알게 됐다. 내가 어떤 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해야 할지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나도 누군가를 이끄는 위치에서 일하게 됐다. 팀장으로서 팀원 몇 명을 챙겨야 했다. 일 전체를 관장하니 확실히 팀원에게 아쉬운 부분이 생겼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과 팀워크를 만들다 보니 이런 부분을 어떻게 소통할지 고민됐다. 더 나아졌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 어린 사람에게 말하듯 하나씩 짚어갈 수는 없었다. 이때마다 힘겨움을 느끼게 한 상사가 떠올랐다. 나도 그런 방식으로 채찍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그들이 역량을 더 많이 발휘해야만 가까스로 성공할 수 있는 팀을 이끌고 있었다.


사람을 이끄는 일에 능수능란한 전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진솔하게 대하기로 했다. 개별적인 면담 자리에서 그저 도와달라고 했다. 나이가 어린 데 팀장을 맡은 것은 하나로 모아서 관리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정 직무에서는 나보다 경력이 많고 전문성도 있는 분이기에 되레 이끌어주셔야 한다고 설득 아닌 설득을 했다. 어쨌든 새로 손발을 맞춰나가는 입장이므로 고치고 바꿀 것이 많을 것이라 맡은 분야에서 아이디어가 생기면 바로 얘기해달라고 했다. 그것이 이후 4년 가까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상대방에게 나를 이끌어달라고 하니 결국 내가 그를 이끌게 됐다. 내가 원하는 방향에 가깝게 팀원들이 따르는 것을 여러 상황에서 확인했다. 그래서 내가 받았으면 하는 격려를 팀원들에게도 보냈다. 개선을 위한 작은 노력이라도 마치 무슨 상을 받는 것처럼 높여서 갈채를 보냈다.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 크든 작든 의미를 부여해 다음 방향을 독려했다. 나만큼이나 그분들에게 긍정적인 시간이었는지는 그 이후 미처 들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따르겠다고 손을 내밀 때, 정작 내가 그들의 손을 잡아 이끌어 가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손바닥 위에 관계를 놓고 맘껏 주무르는
약삭빠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찾은 관계의 바른 답은
정직과 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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