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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Jul 18. 2020

무엇에 그리 몰두하고 있는가

흰머리 날 만큼 고민했던 것들

생각이 많아지면 몸에 티가 나는 사람이 있다. 꼭 내가 그렇다. 신경을 많이 일이 생겨 고민이 늘면 자주 편두통에 시달렸다. 이 녀석은 매우 고약하다. 제 나름대로 뭔가를 열심히 하려고 할 때마다 나를 괴롭혔다. 왼쪽 뒤통수가 저릿하면서 지끈거리는데 집중이 잘 안 되는 통증이 강해진다. 겪어본 사람만 아는 그 고통! 잘 모를 때는 그냥 참았는데 요즘에는 진통제를 한 알 먹고 빨리 해결한다. 한 번에 해소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아주 가끔은 한 알로 나아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좀 지나고 나서 다른 종류로 한 알을 더 먹어야 진정됐다.


머리 쓰는 일이 많아서 그랬을까. 주 업무는 뭔가를 기획하는 일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생각을 표현하고 실행하는 일이 많았다. 부 업무로 그래픽 디자인도 했다. 마우스를 오래 쓰다 보니 손목에 염증이 생긴 적도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 흔적이 남을 만큼 일했다면, 머릿속도 어떤 영향을 주었으려니 생각했다. 사실 맡았던 일들이 대단히 어렵거나 복잡하지는 않았다. 해본 적이 없고 누가 체계적으로 알려주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심적인 부담이 모르는 사이 조금씩 심장을 눌렀다.


잘해야 된다는 압박이 컸던 것 같다. 지난 회사에서 팀장을 하며 유독 흰머리가 많이 생겼다. 이전에도 옆머리 곳곳에 새치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면적이 넓어졌다. 나중에는 어른 주먹만 한 범위가 하얗게 변했다. 거뭇한 색상으로 염색하지 않고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나보다 주변 사람이 먼저 알아차렸다. 머리가 이렇게 하얀 사람이었는지 미처 몰랐다는 언급을 종종 들었다. 아직 그런 얘기를 들을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고민이 없어 새치가 생긴 적이 없다고 말할 만큼 여유 있고 의젓했으면 싶은데 그렇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몰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 요령을 물어볼 사람조차 없었다. 책임지기로 한 팀원에게 제때 월급을 지급하기 위해 보다 많은 매출을 올리고 싶었다. 그러면서 고객들에게 이문만 남기는 장사꾼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파트너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기업이자 개인이 될 수 있도록 알맞은 품위를 갖고자 했다. 그 중심을 잡는 것이 참 어려웠다. 내가 한 방법이 효과적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할 기준조차 모호했다. 매출이 오르든 내리든 간에 그 이유를 수학 문제 풀듯 알 수 없으니 적잖게 답답했다.


엄밀히 말해 그 해답은 누구도 줄 수 없었다. '사장님이 칭찬하면 된 것이다'란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맡은 부분에서는 그분보다 내가 훨씬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영역에서는 내가 정한 것이 기준이었다. 회사가 요구하는 매출이란 지표는 내 입장에서 필요조건이었다. 그보다 본질적인 부분인 고객의 마음을 얻고자 골몰했다. 업체가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도록 만들어줄 동력이 거기에 있다고 봤다. 그 과정이 잘 자리 잡고 새로운 계기를 만드는 것이 확인되면 충분조건이었다. 그러나 그게 잘 되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문득 이것이 단번에 결론 나는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머리가 쪼개지는 기분이 들만큼 고민했던 것은 내 기준을 충족할 가장 좋은 해법을 찾기 위한 고뇌였다. 큰 목욕통에 물을 한 번에 채우고 싶은 열망 같은 것이다. 실제 일은 졸졸 나오는 수돗물을 받듯 더뎠다. 어느 정도 깊이까지 차야 몸을 담그고 씻을 텐데,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과정이 힘들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이 알고 멀리 보는 듯하지만, 현실에 닥치면 또 어렵다. 왜 인생은 원하는 바가 천천히 이뤄질까 싶어 질 때, 잠시 걸어온 발걸음을 세어보며 숨을 고르면 좋겠다.


가시적인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
발 밑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제 발에 묻은 흙과 때를 보며
얼마나 걸어왔나 돌아봅니다.
내일 다시 걸을 힘을
이 순간에 얻을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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