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hite whale Jul 28. 2020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두려움의 그림자가 나를 덮을 때

가끔 무언가에 목덜미를 잡힌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길거리에서 잘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다짜고짜 멱살을 잡는다면 분노보다 황당한 감정이 먼저 들듯, 난데없는 두려움이 턱 밑을 파고들면 잠시 어안에 벙벙하다. 이를테면 한 번은 아이의 교육 문제로 얼어붙었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주로 집에 있는 아이의 실생활을 살피다 심각해졌다. 동영상과 상호 작용하지 못하는 아이가 기계적으로 수업을 해치우는 모습은 그나마 괜찮았다. 그 외에 남는 시간에 딱히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줄 수 없는 부모 입장이 되니 현실의 벽이 느껴졌다.


'이대로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마음의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 주변 정보를 취합해보니 우리 아이가 하는 것이 정말 많지 않았다. 그나마 교구로 마련했던 책이나 앱들은 너무 부족해 보였다. 그렇다고 당장 학원을 보낼 상황이거나, 옆에 오래 붙어서 아이를 지도할 입장도 되지 못했다. 게다가 아이들은 학원에 가기보다 그냥 서로 놀고 싶어 했다. 사실 아내와 나도 억지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낮 시간에 돌봐주시는 친할머니의 도움을 잠깐 기대했으나, 아이들은 교육이 아니라 보육을 원했다. 결국 교육 콘텐츠를 강화하는 쪽으로 타협했다.


이런 갈등은 일상적인 목표에서도 적잖게 발생했다. 내가 확신하여 노력한 바가 영양가 없는 일로 보일 때 무릎에 힘이 풀렸다. 과거에 업계를 바꿔 이직하고자 시도했을 때 자주 공황에 빠졌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란 생각으로 접근한 노력이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힘든 도전을 감행할 만큼 무슨 대단한 꿈이 있었나 자문하며, 이런 선택을 할 만큼 애초에 굳지 못한 길을 선택한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있고 앞서 가는 듯 느껴질 때, 두려움이 준 초조함에 가슴속이 탔다.


이 마음은 사실 나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됐다. '무엇이든 마음먹고 노력하면 된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 실은 그렇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며 괴리감이 생긴 탓이다. 노력이 부족했든 잘못된 방식으로 애썼든, 나의 바람을 이루지 못한 어떤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짐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 처지에 두려움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정적인 감정이 증폭되고 때때로 자포자기한다. 문제를 돌파하지 못하고 그 앞에 주저앉아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절망은 마음의 문을 닫게 한다. 단단히 잠긴다.


이 과정을 몇 번 거치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삶에 주어진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있다고 여길 때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막힌 무언가를 정말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두려움은 성취의 촉매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이 나를 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나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하게 됐다. '정말 내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나'라는 질문 앞에 부정의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삶의 뿌리를 흔드는 '진짜 문제'를 만나면 이 질문 앞에 진지해진다. 누군가는 이것을 생사의 기로로 삼으니 보통 일이 아닌 게 맞다.


그 이후로 인생의 난제 앞에 겸손해졌다. 내 안에 답이 있거나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용쓰지 않았다. 평소 내가 잘하는 조사, 분석, 가설, 검증 따위의 프로세스를 차용하지도 않았다. 내가 인지하는 범위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해답이란 게 진짜 문제 앞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저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신중하게 고르고 힘껏 행할 뿐이었다. 그리고 난 예수님을 믿으니 그분께 그 뒷일을 맡겨 버렸다. 이것이 내가 두려움의 그림자를 벗어난 방법이다. 그것이 늘 내 곁에 있지만 나를 덮지 못하게 만들었다.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해석하고,
그것을 해결할 정확한 방법을 안다면,
두렵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따금 두렵고,
그것이 가까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한계를 자주 가늠하게 됩니다.
이전 13화 무엇에 그리 몰두하고 있는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