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돈 생각으로 가득할 때
유튜브를 보다가 머리가 마비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난 그동안 뭐했지'류의 생각이 들 때다. 요즘은 이른바 '부자 아빠' 되는 방법에 눈과 귀가 쏠린다. 90년 대에 금융 상품을 중심으로 한 재테크 열풍이 시작한 이후 최근에는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수입원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다. 한쪽에는 대박을 낼 수 있는 1인 사업을 모색하거나 많게는 월 200만 원씩 부수입을 만드는 비법을 일러주는 한편,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 경제를 읽고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남들 돈 벌 때 나는 뭐했나'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1~2년 사이에는 집 못 산 사람의 심정을 공감하며 몸살 아닌 몸살을 앓았다. '2년 전에 전세가 아닌 매매를 택했으면 지금쯤 몇 천만 원의 차익을 봤을 텐데'라는 한탄은 가족 사이에 자주 씹고 뜯었던 이야깃거리의 결론이었다. 당시 차액을 융자받아 이자 낼 분량을 계산해 보면 적은 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집값이 올라도 너도나도 사고파는 부동산 시장의 소식을 들으며 우리만 돈을 못 번 느낌에 괜히 초라해졌다.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소박한 마음과 몇천만 원의 불로소득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마음 사이 어딘가를 헤맸다.
사실 그 마음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남들만큼 돈을 갖지 못하면 어쩌나'라는 마음이다. 직장 생활이 쌓여가고 월급이 늘어나면서 돈의 위력을 일부나마 느낀 탓인지도 모르겠다. 10살도 안된 어린아이가 유튜브 방송으로 대박이 나서 서울 강남에 빌딩을 샀다는 뉴스를 들을 때나, 까마득한 동생이 회계사가 되어 지금의 나만큼의 초봉을 받는다고 소식을 들었을 때, 막연한 비교의식이 마음속에 넘실댔다. 훨씬 부유한 인생을 살 것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의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에 반해 나는 그 정도도 살지 못할까 봐 초조해졌다.
심지어 그런 돈마저 벌 수 없는 미래가 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균 수명이 과거보다 많이 늘어나 노후에 필요한 자금 규모가 커졌으며 생활수준은 높아져 월 300만 원은 꾸준히 있어야 한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다. 한 달이라도 빨리 월급의 얼마를 꾸준히 투자해 불리면 몇십 년 뒤에 얼마가 될 것이니 나중에 수입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줄어든다는 유튜브 방송의 조회수는 몇 십만 명에 이르렀다. 나도 그중 한 명이 되어 어떤 책을 보고 뭘 더 공부할지 고민했다. 답은 없으면서 끝도 없는 고민의 연속이었다.
문득 내가 '그 돈'을 의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정말 가질 수 있을지 모르면서 벌기를 갈망하는 돈이다. 실제로 그렇게 벌었을 때 그만큼의 만족과 안정감을 누릴지 알 수 없으면서, 그것만 있으면 모든 것이 좋을 것이라고 느끼는 대상이다. 실체가 있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얘기하지만 아무도 보장하거나 확답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것이 내 인생의 생로병사를 책임질 것처럼 몸과 마음을 기울이고 있었다. 불확실성이 인생의 요체임에도 그것을 줄이는 것에 투자하라는 흔한 논리는 모순이었다. '그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었다.
내가 의지하는 것이 내게 영향을 미친다. 돈이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결론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부끄럽거나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그것만 쫓으면 돈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다. 일례로 나는 돈 문제로 아내와 종종 다퉜다. 같이 행복하고자 돈을 버는데, 돈이 없어 불행한 것처럼 싸웠다. 아내가 동반자가 아니라 돈을 나눌 대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돈 때문에 살인하는 괴물에 대한 뉴스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현실은 돈을 의지하는 인생의 슬픈 자화상이 아니던가. 적어도 나는 그것을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의지하는 것이
제 현실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을
찾고 자주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