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좀 벌어보겠다고 그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라며 돈을 우러러본 적이 가끔 있다. 회사에서 연봉 계약을 할 때다. 지난해 성과와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 새로운 연도의 연봉을 책정해 계약서를 만드는 과정이다. 협의한다고 하지만 회사에서 제시한 숫자를 바꿀 여지가 거의 없다는 면에서 형식적인 절차에 가깝다. 지난 회사에서는 많으면 전년보다 4% 정도까지 인상해줬다. 단 한 자리 숫자가 사람의 기분을 묘하게 바꾼다. 회사가 정한 최고 상한 비율까지 인상될 때는 얼마나 우쭐하게 되던지. 내가 번 돈을 수고의 대가라고 생각했을 때는 분명 많을수록 좋았다.
그런데 이 감정을 깊게 들여다보면 좀 우스웠다. 회사의 녹을 먹는 입장에서 내 수고는 윗사람보다 더 중시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었다. 뭔 일을 해도 사장님보다는 무조건 덜 수고한 것이 되는데도 좋아했다. 직책과 직무가 다르고, 경력과 숙련도에 따라 다른 봉급을 받는 것이 언뜻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이는 '회사의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룰이다. 마치 군인이 전역하면 더 이상 군대의 사고방식과 규율이 의미 없듯, 회사 밖에서는 무가치한 법이다. 똑같이 생명의 분량을 써서 일했는데 그 값어치를 매번 남이 정한다고 생각하니 좀 억울했다.
그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던가. 안정적이고 넉넉한 급여,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직무, 위아랫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직책,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을 얻고자 참 열심히 살았다. 지금보다 푸르렀던 대학생 시절, 신입생 때부터 취업 마라톤의 선두 대열에 합류하고자 부지런을 떨었다. 토익, 봉사, 동아리, 그리고 기타 도전 등... 남보다 돋보이는 무언가를 하려고 애썼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과 같은 줄에 서면 작아지는 경쟁의 파도를 뚫고 어딘가에 자리 잡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남을 위한 일이었을지도. '그 돈' 앞에 서면 그렇다.
사실 젊을 때는 그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그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시간과 비용을 들였던 공교육과 사교육이 아깝지 않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 부유하지 않은 집안 배경 덕분에 나를 위해서 큰돈을 써본 적이 없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적당히 내 한 몸을 건사할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이 생각이 바뀌었다. 나의 재정적인 관점과 시야가 아내는 물론 자녀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덕분이다. 나보다 내 가정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이게 남편이자 아빠인 사람이 하는 고민의 궤도였다. 많든 적든 돈을 벌기 시작하면 그것을 어떻게 불릴지 고민이 많았다. 한 번은 '시스템 월급'이란 용어를 접했다. 투자를 통해 꾸준한 금융 수입을 만들어 현재 월급 수준의 돈을 매달 얻는 방법론이었다. 일하지 않아도 가정을 부양하며 살 수 있는 소위 '경제적인 자유'를 향해 너나 할 것 없이 뛰고 있었다. 자칫하면 죽는 순간까지 '그 돈'을 어떻게 벌어낼까 고민하기 십상이었다. 그렇게 벌어 경제적인 안정을 얻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니. 그렇게 되고 싶지도, 돼서도 안된다 싶었다.
만약 꿈꾸던 그 돈을 벌면 뭐 할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아내, 아이들, 나에게도 재정적으로 부족하지 않다면 언뜻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다다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까. '넌 이렇게 살기 위해 태어났니'라는 물음에 수긍하며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돈을 버는 것 못지않게 벌고 나서의 삶에 대해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은 죽으면 그만이다. 매달 정량의 돈을 벌고 쓰는 것이 생의 전부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보다 가치 있는 삶의 의미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돈을 버는 목적이
가족을 부양하거나,
맘껏 소비하거나,
어디든 여행 가거나,
무엇이든 시도하는 것이 전부라면,
제 인생은 돈을 쓰기 위해
태어난 셈입니다.
저는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태어났고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을 반드시 찾을 겁니다.
돈은 거기에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