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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Aug 19. 2020

지금 물에 떠내려가고 있는가

죽은 물고기처럼 살고 있을 때

오랜만에 찔리면 피날 것 같은 문장을 만났다. '죽은 물고기만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 글씨를 읽는 순간 눈앞에 그림이 그려진다. 어디선가 볼 법한 이 말은 독일의 한 시인이 남긴 격언이다.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교육을 경계하라는 조언이다. 이 문장이 지난 일상에 말을 걸었다. 나도 한국에서 교육받은 여느 사람처럼 기출문제를 외우고 정답의 패턴을 찾는 일에 익숙했다. 이런 방식을 촉진하는 사회와 교육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고 여기서 죽은 물고기가 늘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이 간다. 사유 없이 지냈던 지난 생활이 떠올라 내심 아팠다.


돌이켜보면 지난 직장 생활에서도 정답 찾기에 골몰했다. '매출 올리는 방법'을 문제로 푸는 학생처럼, 문제 족보를 찾고 남들의 풀이를 연구하며 답을 유추했다. 이런 접근은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 크든 작든 매출이 올랐기 때문이다.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은 듯했다. 연구 성과를 예상대로 얻었으니 역량이 올라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에 대한 생각은 거기서 멈춰버렸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은 채 그간 찾은 방법을 약간씩 변용해 적용했다. 겉보기엔 효율적이고 탁월했다. 그러나 실상은 뻔한 곳에 갇힌 듯 답답하고 지루했다.


남들이 말하는 '직장 3년 차 징크스'인가 싶었다. 맡은 역할에 익숙해지고 어떻게 해야 성과가 나는지 알 것 같으니, 역설적이게도 일의 재미가 줄었다.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어느새 사라졌다. 모르는 사이 해야 할 일만 겨우 하는 사람이 됐다. 정해진 시간 동안 맡은 일만 기계적으로 하고, 다 못하면 내일로 미룬 후 퇴근했다. 오늘 하든 내일 하든 목표 달성에 큰 지장이 없다고 판단되면 부담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게 진짜 문제였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만 머물기로 한 탓이다.


진짜 문제를 자각할 여지는 실생활에서 적지 않았다. 일례로 팀장으로 일하면서 사업에 대한 비밀을 하나 알게 됐다. '매출이 왜 오르는지 진짜 이유를 모른다'라는 것이다. 익숙한 문제 해결 방식을 따라 여러 가지 사례와 방법론을 분석하고 나름의 전술을 계획하지만 이것이 정확히 얼마나 기여하는지 알 수 없다. 그냥 짐작할 뿐이다. 10만큼 시간과 비용을 들였을 때, 매출이란 결과가 30이 나올지 100이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냥 매출만 오르면 됐다. 내가 만든 방법으로 타성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 빠져나올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습관이 최근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쳇바퀴를 도는 것 같은 일상과 관성에 빠진 분야를 바꿔보고자 개인 사업이란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도 그랬다. 새롭게 도전한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과목'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문제를 푸는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사례와 방법론을 분석하고 나름의 방법을 찾는 틀'은 그대로였다. 남들이 이미 해본 것과 검증한 것을 대단한 지식처럼 여겼다. 시간이 흘러 이것이 기술이 될지는 몰라도 지혜가 될 수는 없었다. 관심을 갖고 남다르게 보고자 궁리하지 않으면 또 다른 관성을 될 것이다.


더 이상 '죽은 물고기'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남과 다르게 살려면 사유가 필요했다. 많은 사람이 추천하는 내용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차용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나만의 의견을 찾고 실제 검증해보는 실천이 있어야 했다. 일에 애정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성과와 성취보다 앞세울 수 있는 어떤 마음이다. 나는 이게 초심에 가까웠다. 어떤 일을 굳이 시작하게 된 계기가 그 일 자체보다 중요한 덕분이다. 그것이 좋은 의도였는지 선한 의지였는지 혹은 무모한 용기였는지 찬찬히 돌아본다. 덕분에 삶의 물살을 조금씩 거스르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즐기지,
그저 따라가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일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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