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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Jun 11. 2020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막막하고 답답한 어딘가에 서 있다면

요즘 아이들과 함께 뉴스 듣기가 겁난다. 얼마나 끔찍한 일이 많이 벌어지는지 사실의 일부만 전해 들어도 민망한 사건이 자주 들린다. 애아빠다 보니 최근에 주목받은 몇 건의 아동학대 사건이 귀에 남았다. 아이를 가방에 가둔 채 굶기고, 혹은 목에 쇠사슬을 매어 두며, 손가락을 불에 지지고... 짐승만도 못하다고 표현하다 동물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절대 일반 자연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낳은 자녀이거나,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자기보다 어리고 약한 생명을 함부로 다루고 괴롭히는 것은 인간만 벌이는 짓이다. 악이다.


이 뉴스의 당사자였던 아이를 떠올려 보았다. 한 인터뷰에서 이 아이를 만났던 편의점 직원의 말을 전했다. 아이는 얼굴 여기저기에 멍 자국이 가득했고, 씻지 않아 냄새났으며, 어른이 신는 슬리퍼를 아무렇게나 신은 채 먹을 것을 사려고 했다. 무언가 이상하다 싶어 말을 걸었는데 물건을 고르는 손 끝에 지문이 없었다. 무언가로 인해 눌어붙었다. 혹시 너무 위험하다 싶으면 가게로 달려오라고 말하는 어른의 말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아이의 눈빛은 어땠을까. 허겁지겁 포장지를 벗겨 음식을 삼키는 아이에게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 아이에게 나는 어떤 위로를 전해줄 입장이 못 된다. 그 상황을 똑같이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타깝다고 부모 노릇을 할 수도 없다. 어쩌면 편의점 직원처럼 최소한의 물리적 보호를 담보하거나, 법의 보호를 받도록 돕는 것이 최선일지 모르겠다. 혹은 오지랖이 넓어 그 아이를 도와줄 가족이나 후견인을 찾아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정말 그 아이에게 의미가 있을까도 싶다. 그 아이는 자신의 시기에 꼭 필요한 보호와 관심, 안정적인 공급과 격려를 얻지 못한 채 자랐다. 그 빈자리를 어떤 사회적인 지원이 채울 수 있을까.


아이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들이 겪었을 고통과 두려움, 번민과 막막함, 답답함은 사실 부모가 책임질 죄다. 만약 그 아이를 길가에서 만난다면 잠시 멈춰 손을 붙잡은 채 울 것 같다. 같은 세상에 사는 어른 중 한 명으로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해주겠다. 지금의 힘든 상황과 과정이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꼭 짚어주고 싶다. 그리고는 내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어른인 나도 때때로 인생을 살면서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고. 그 터널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그곳을 빠져나와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오래 살아보지 않아도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그 아이와 달리 평범한 여건에서 자란 나도 종종 그런 절망감을 느낀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세상을 사는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고등학생 때는 대학에, 대학생 때는 취업에, 돈 없을 때는 돈 벌 궁리에, 실패할 때는 성공에 목을 매며 사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이 바라는 것을 쫓아 살고,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을 때 전부를 잃어버린 것처럼 낙심하기도 한다고 말해주겠다. 아직 바라는 것이 없거나 자라지 않은 아이의 삶에는 기대하고 꿈꿀 여지가 많이 있었다.


그 절망적인 순간에 소망을 붙잡고 일어나 지금처럼 살고 있다고 말하겠다. 도무지 인생에 희망이 없다고 느껴져도 거기가 절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내 삶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바뀔 것이란 약속을 믿고 일어났다. 처음에는 그냥 먼 역사 속에 기록된 성경 구절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 것이 되면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만 보던 시선이 바깥을 향하게 됐고, 가장 불쌍해 보였던 내가 다른 이를 돌볼 수 있게 됐다. 내가 변했다면 너도 달라질 수 있단다. 정말 살아볼 만하다. 아이의 눈을 따뜻하게 보며 꼭 말해주고 싶다.

아이를 키워보니
그냥 어른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받은 것들을
좀 더 많이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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