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성을 쌓아 올린 베개 위 시간들
눈을 감았는데 뜬 것처럼 명료한 밤이 있다. 번민, 고뇌, 염려... 여러 단어로 부를 수 있는 심상들이 분주히 머릿속을 뛰어다닌다. 빛보다 더 빠르게 달리겠다는 심산인 듯 지구의 종과 횡을 가로지르며 이리저리 헤매는 고민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따금 내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나를 잠들지 못하게 흔들어 깨웠다. 무언가에 쫓기듯 생각을 하게 만들고 답을 찾을 때까지 달려간다. 지금 당장 어딘가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은 인생의 불확실성을 마주할 때 생긴다. 칠흑 같은 어둠에 내 발가락조차 볼 수 없을 때 더욱 그렇다.
이 서사는 내 머리 안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무언가를 성취해야 할 압박 앞에서 이런 막막함을 느꼈다. 이 감정의 근본적인 원인은 나만의 기준이다. 누가 그렇게 고민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스스로 그것을 더 잘 해내겠다는 바람이 어떤 목표선을 만들었다. 혼자 이것을 넘지 못할까 봐 미리 계산해보며 두려워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이렇게 인지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역량과 주변 환경을 대보면서 성공할 방식을 나름대로 찾아본다. 그런데 정작 그 예상은 그다지 영양가가 없다. 답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을뿐더러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맹탕인 고민을 베개 위에서 오래 붙들고 놓지 못한다. 이유는 그것에 뭔가 해답이 있을 것 같다고 믿기 때문이다. 애타는 마음이 현실을 뛰어넘게 만들 것이라 여기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일례로 한 번은 승진에 대한 문제로 생각의 늪에 빠진 적이 있다. 연말이 되어 한 해동안 했던 일에 대해 자기 평가를 제출하는 과정이 있었다. 나름대로 매우 열심히 했고 소기의 성과도 있었기에 승진이 될 법하지만 바로 전년에도 같은 기대를 했다가 좌절했던 적이 있었다. 승진이 안되면 어떻게 하나, 누가 될 것인가 따위로 몇 시간을 씨름했다.
어느 순간 이것을 끊겠다고 마음먹었다. 행동보다 생각이 몇 발 더 앞서가는 성향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지만 결과적으로 해롭다. 이런 식의 생각은 때로 끝이 없어 몸은 물론 마음도 지치게 만든다. 제때 잠들지 못해 생활 리듬이 깨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체력이 부족한 느낌에 낮 시간 동안 피곤하니 평소 같이 활동하지도 못한다. 계획한 것을 제때 실천하지 못하고 미루는 경우도 생긴다. 며칠 지나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며 줄거리를 이어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반복하다니. 분명 어리석다. 남몰래 분주해지는 마음을 붙들어야 했다.
마음을 향해 소리 없이 외쳤다. 지금 고민하는 어떤 것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령 그중 단 하나가 실현된대도 그것이 닥쳤을 때 무너질 리 없다고. 잘 생각해보면 문제 앞에서 갈대처럼 넘어지는 사람이 아님을 금방 알게 된다. 좋은 컨디션과 맑은 정신이 있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잘 행동하는 사람인 것을 안다. 괜히 어떤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유발하여 자신을 초라하게 본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란 성경 속 경구도 이럴 때 참고할 만하다. 나를 괴롭게 한 그 어떤 것도 잠자리까지 따라오지 못한다. 내 그림자를 보고 혼자 놀란 격인 듯 싶었다.
생각의 성을 무너뜨리고 내일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한다. 혼자 오래 생각을 쌓으면 그것이 어떤 성체가 되어 경계를 만들고 갇히게 한다. 환경이 준 어려움, 역량의 비교 따위가 만든 저급한 열등감이 그 안에 쌓인다. 그러나 내가 아닌 내가 되려 고민하던 것을 멈추고 성을 당장 허문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하겠다고 다시 결심한다. 이 진솔함이야 말이 아닌 행동에까지 이르게 하는 디딤돌일 테니. 그래야만 결국 원하는 어딘가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고민이 덧없어 보일 때는 이미 그 방향으로 몇 걸음 걸어가는 중일 것이다.
잠들지 못했던 청춘의 날들을 돌아보며
즐겁게 잠들 수 있는 이유를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