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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Sep 06. 2020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더 이상 먹고살려고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면

영화 같은 일인데 그럴싸한 생각 하나를 진지하게 해 봤다. 생계로 시작한 사업이 우연히 잘 돼서 재정적인 자유를 얻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것이다. 노력에 비해 버는 것이 많은 꿈같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복권 1등 당첨된 것처럼 갑자기 얻는 재물은 아니다. 요즘 소위 '현실 부자'로 불리는 매월 천만 원 버는 사람 정도로 그림을 그려본다. 졸지에 부자 돼 폭삭 망하는 시나리오 말고 정말 있을 법한 그런 사람이 된다면, 지금 사는 수준을 유지하면서 재정적 여유를 소박하게 즐길 수 있다면, 좀 다른 일도 해보고 싶어 질 것 같다.


'돈이 많아도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란 물음 앞에 섰다. 잠시 먹먹해졌다. 본능적으로 무슨 일을 정말 하고 싶은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글이 쓰고 싶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언어적 요체가 담기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시간의 제한 없이, 마감이나 재정적인 독촉에 쫓기지 않고, 관심이 생긴 주제를 깊이 알아보고 탐구한 후 그것에 대해 이모저모 소개하는 일이 그리웠다. 돈이 많다면 누구에게 비용을 주고 부탁하고 싶을 만큼. 그래서 그걸 담는 미디어를 만들고 싶었다. 보물 상자처럼 종종 꺼내볼 그런 장소가 되도록.


누군가 알아봐 줬으면 하는 일이 아니다. '호기심이 가지만 바쁘니까 더 깊이 들여다볼 시간이 없어'라며 지나쳐 버린 여러 가지를 좀 더 촘촘히 알아보고 싶을 뿐이다. 전쟁, 평화, 난민, 기아, 질병, 인종과 같은 사회적인 주제뿐 아니라, 우주, 기술, 생명, 자연, 예술과 같은 광범위한 영역들에 한 번쯤 푹 빠져보고 싶다. 직업적으로 늘 접해야 하는 것 말고, 선택과 포기를 부담 없이 결정하며 취미처럼 다뤄보고 싶다. 그래서 이전보다 좀 더 넓은 시야와 안목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배운 것을 아이에게 하나씩 일러주고 싶다.


뭐든지 하고 싶은 상상의 나래는 항상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하는 현실과 이어져 있다. 평소 일상은 어느 정도 일정한 짜임새로 반복된다. 매일 일정 시간 동안 할 일을 하고 어느 시점부터는 아내, 아이 곁에 있어야 한다. 아이와 함께 잠들고 다시 일어나 하루가 시작된다. 그런 와중에 큰 아들은 아빠의 퇴근 시간을 매일 확인한다. 언제부터 아빠와 놀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다.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제깍 전화가 온다. '언제 퇴근해'라며 묻는 말에 더 하고 싶은 일도 오래 끌 수 없다. 일단 멈추고 아이의 세계로 달려간다. 늘 이런 식이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삶을 원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또 다른 시간에는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과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는 일상이다. 머릿속에서 그릴 때는 소박한 줄 알았는데, 활자로 적고 보니 적지 않게 거창하다. '돈 많은 아티스트 아빠'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서 볼 법한 인생이 아닌가. 뭔가에 꽂혀 예술혼을 불태우고, 혼자 만족감을 느끼며 즐거워하고, 가정과 친구가 주는 안정감을 누리는 모습이라 관객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그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마음은 설렌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싱그러운 느낌이 든다.


정말 바라는 것을 그려보니 지금 하는 일이 척박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지만, 꿈의 일부분을 현실로 가져와 비슷하게 일하고 있어서다. 의미 있는 상품을 찾아 콘텐츠로 소개하고 유통하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즐겁지는 않지만 즐거운 일은 항상 있었다'. '곰돌이 푸'가 했던 말인데 요즘 내 삶에 딱 들어맞는다. 7년여 회사 생활을 마치고 작은 온라인 자영업을 시작한 요즘, 때 이른 몽상을 하며 등땀 나는 하루를 식히고 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알고 나니, 해야 할 일도 점점 그 일을 닮을 것 같다. 룰루랄라.

언제부턴가
하고 싶은 일조차
인상 쓰며 하고 있더군요.

마음처럼 잘 안되니까,
실패할 것 같아 조마조마하니까,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으니까...

근데, 웃으며 살려고 하는 일이란 생각에
미리 좀 웃으며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도 좀 잘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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