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보폭을 맞추려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뛰는 순간이 있다. 아직 출발선에 다다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도착지점 부근까지 마음이 뛰어간다. 그러니 몸도 괜히 바빠진다. 두 걸음 가야 할 거리를 한 달음에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가 본다. 그래서인지 발걸음이 부자연스럽다. 다리도 힘이 풀릴 것처럼 휘청인다. 자칫하면 넘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바람처럼 진도가 안 나간다 싶고, '아직 이만큼밖에 못 왔나'하는 부족감이 마음 한편에 있다. 나름대로 인생의 목표를 세워 노력하는 무렵에 나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뭔가 부산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더 잘하려고 할 때 특히 그랬다. 돌이켜보면 대학 이후 가진 목표는 대부분 직업적인 일과 관련이 많았다. 시간, 노력, 돈을 들여 애쓴 이유는 맡은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되려는 목적이었다. 단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좀 더 효용성이 높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남보다 빨리 배우고 열심히 일하며, 남다르게 생각하길 원했다. 그런 동기가 처음에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타인의 기준을 위해 애썼던 나를 자각하며 서둘렀던 손발에 허망함을 느꼈다.
무엇을 더 잘하고 싶지 않을 때는 서두를 일도 없었다. 그저 맡은 일에 큰 문제가 없도록 하면 됐다. 사회생활이 익숙해지고 그런 노력이 없어도 내 자리를 지키는 듯한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즈음에 인생의 강물을 따라 어딘가로 떠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에 나름대로 애쓰고 수고했던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만약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노력했을까'라는 질문이 생겼다. 그런 모습을 기대하거나 꿈꾼 적이 없지만, 상황과 환경, 처지를 따라 그렇게 변해 있었다. 그저 월급을 받고자 일하는 것 같았다.
일을 대하는 자세를 고쳐 잡아야 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존재하기 위해 일하고 싶었다. 마이크는 마이크대로 스피커는 스피커대로 제 나름의 역할을 갖고 있듯,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고유한 무언가를 가지려 했다.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 중의 하나가 일이 되길 원했다. 이를테면 남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훈련하는 이유는 그런 역량이 필요한 일을 잘 해내고 싶어서였다. 특정한 직장의 자리나 일을 위해서, 혹은 이를 통해 벌게 될 돈만 바라보고 나를 단련한 것이 아니었다. 우선순위가 바뀔 때 내면에 티가 났다.
주어진 여건에서 나의 존재가 충분히 우러나오도록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성과가 모자라거나 내 기대에 못 미쳐도 바라는 모습을 향해 한 걸음씩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다. 뛰어가면 좀 더 빨리 성취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럴 능력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고등어 하나를 구워 먹으려 해도 기름을 바르고 불 조절을 하며 이리저리 뒤집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하물며 사람이 제 모양을 찾고 만들어 가는 일이 어찌 쉬울까. 이따금 마음을 비집는 비교의식과 조급함, 막막함과 싸우는 것도 어쩌면 과정이겠다. 원석을 깎고 갈아 보석을 만들듯.
몸과 마음이 더욱 보폭을 맞춰 걷도록 하고 싶다. 서두르는 감정이 종종 내면에 얼굴을 내밀 때 잠시 멈춰 나를 돌아본다. 성공하지 못해 안달 내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 존재보다 더 앞선 기준이 되어 나의 등을 떠밀고 있나. 더 성공할 필요가 없는 무기력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내가 하고 싶었던 바에 집중해야 했다. 배우고 조금씩 더 나아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지 않은 이유를 찾아 그 자리에 버리고 가야 했다. 그리고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걸어가기 시작한다. 내가 가지고 누리는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좀 더 다듬어질 나를 그려본다.
잠시 멈추는 것은
몸과 마음이 발을 맞춰
좀 더 잘 걷기 위함입니다.
가끔 뒤를 돌아보며
확인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