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방정식을 풀고 싶었던 시절을 돌아보며
오랜만에 본 영화의 잔향이 오래 남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에 본 '테넷(Tenet)'이 그랬다. 최근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뽀로로가 보물 찾는 만화였다. '극장 애니메이션 퀄리티가 높네?'라는 감동을 받은 이후로 오랜만에 강렬한 기억을 얻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영화 속 일부 세계관을 반영한 사실적인 영상과 입체적인 전개에 보는 내내 압도됐다. 그런데 정작 감상 후에는 새롭게 떠오른 생각에 사로잡혔다. 기술 결정론에 대한 사유다. 어떤 기술이 우리 삶을 더 진보하게 혹은 퇴보하게 만든다는 테넷 이야기의 전제를 읽게 되서다.
이는 약 10여년 전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주제 중 하나였다. 코로나19처럼 창궐했던 페이스북의 열풍, 트위터의 찬란한 활약, 그 덕분에 생긴 중동 지역의 민주화 바람 등등, 소셜미디어가 바꾼 사회 안팎의 풍경을 보며 마치 내 일처럼 흥분했다. 미주 개척시대에 금광을 발견한 사람처럼 세상을 더 낫게 만들 비밀을 찾은 듯 IT기술에 빠져들었다. 그 역사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보다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기술은 사람이 이해하는 만큼 사용됐기 때문이다.
과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 당시 비슷한 고민을 나눴던 전 직장 사람들과 대화하는 꿈을 꾸었다. 올 봄에 회사를 그만둔 이후 근황이 어떤지 묻는 사람들에게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언택트 시대'다 뭐다 하며 거창하게 불리는 코로나 이후 시대에 더 중요해졌다는 온라인 유통업이었다. 걱정 섞인 반응이 돌아왔다. 요약하자면 '너도나도 뛰어드는 요즘 같은 때에 그 사업을 시도하는 게 괜찮은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전염병이 가둬 버린 경제 활력을 풀어줄 마스터키처럼 회자되는 그 기술이 '성공의 보증수표'가 될까 하는 점이다.
내 대답은 '모른다'였다. 그냥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을 선택한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기술이 준 희망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현재 역량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택했다고 판단해서다. 이를테면 내가 사업을 온라인 방식으로 하겠다는 선택이 곧 결과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일을 하는 계기일 뿐이었다. 원하고 바라는 그림이 되도록 노력하고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단지 어떤 방법 자체가 '성공방정식'의 답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보다 큰 문제는 노력으로도 더 나은 성과를 보장할 수 없는 점이었다.
성공이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생의 역설이다. 이것을 진지하게 돌아봤던 어느 날, 큰 충격에 빠졌다. 성실함이 삶의 금도였던 배움의 시간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주변 친구만 돌아봐도 노력 이외의 요소에 힘입어 삶의 궤적을 다채롭게 그리며 살고 있었다. 그 탓에 남은 가졌으나 나는 갖지 못했던 금수저 같은 것을 잠깐이나마 동경했다. 첨단 지식과 남다른 기술, 우월한 자본이 있으면 쉽게 잘될 줄 알았다. 그런데 실은 이것마저 성공의 전제가 아닌 변수에 불과한 것을 깨달았을 때, 관점을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
외부의 무언가로 내 인생을 진짜 더 낫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훨씬 많은 것을 받아들인 덕분이다. 확실한 것은 내 태도뿐이었다.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은 스스로 확증할 수 있다. 마치 농부처럼 주어진 환경, 한계, 상황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것이다. 당장 과수원을 갖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살지 않고, 작은 텃밭이라도 제대로 일구겠다는 각오다. 오늘 땀 흘릴 수 있고 제때 수확하는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소박함이 절실한 요즘인 것을 새삼 확신하게 된다.
제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가꾸고 돌봤을 때
제가 노력한 것보다
더 큰 열매를 수확하는 경험이
값지게 쌓여갑니다.
그래서 살 맛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