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시작될 때
애아빠 치고는 젊은 편이란 생각에 남모를 자부심이 있었다. 비교적 결혼을 빨리 한 덕분에 30대 초반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기 때문이다. 큰 아이가 6살 때 참석한 운동회에서 이 부분을 크게 느꼈다. 참석한 아빠들 중 나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제일 젊다고 단정하기 애매한 상황임에도 내심 어린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내며 신나게 참석했다. 어쨌든 계주 경기의 마지막 주자로 달려 팀을 1등으로 만드는 데까지 공헌했으니 이 날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웬만큼 다 했던 것 같다.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이 눈에 띄었던지 행사 MVP까지 받았다.
그런데 젊다고 체력까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해가 더할수록 쉽게 지치는 느낌이 강해졌다. 4년 가까이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회사를 다니면서 더 심해지지 않았나 싶다. 퇴근 후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 보면, 지친 나머지 배터리 다 된 핸드폰처럼 기절하듯 잠드는 경우가 흔해졌다. 다시 정신이 들면 출근해야 될 시점이었다. 주말에 모처럼 늦은 시간까지 뭔가를 하고 잠들면 그 다음날 지나치게 기력이 없었다. 그나마 시간을 쪼개 짧은 시간이라도 땀 흘리며 꾸준히 운동을 했는데도 그랬다. 그래서인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늘 짧고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20대 때처럼 나를 위한 여유가 그리웠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처럼 직장에 다니고 육아와 가사에 매진하는 일로도 충분히 벅찼다. 이런 시간이 계속 쌓일수록 때때로 답답했다. 새로운 무언가를 향해 진보하기보다 정해진 범위에 갇혀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진 탓이다. 내가 선택한 삶이 이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3년 뒤 내게 말을 걸었다. 지금 내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그러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에 기쁜 표정으로 한껏 끌어안았다. 시간이 늘 모자라도 허투루 쓴 적이 없었던 시절들. 그러고보니 3년 전에도 그랬다.
상황과 처지는 달랐지만 그 전에도 비슷한 모습이 있었다. 치열하게 살았다. 주어진 일에 나름의 마음을 담아 몰입했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의미 있게 살고자 매사에 몸부림쳤다. 기분상 차이가 있었겠지만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빨리 흐른다고 느꼈다. 어차피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은데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지에 대해서는 굳이 고민하며 시간 쓰지 않기로 했었다. 현재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과거 탓을 한다고 더 나아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내일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오늘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마음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잠시만 나를 돌아봐도 그 사이 경험과 생각이 몰라보게 자란 것을 알 수 있다. 내면은 단단해졌고 생각의 방향은 분명해졌다. 미래를 보는 시야는 넓어졌고 사람과 환경에 대해 보이지 않는 면을 살피는 여유도 생겼다. 과거의 내가 몰랐던, 성장한 나다. 내가 선택한 직업이나 역할이 인생을 만들어온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것을 대하는 내 자세가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고, 지금도 그러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현재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하루가 힘겹게 느껴질 때 3년 뒤의 나를 찾아간다.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혹 그는 지금의 내가 못 알아볼 정도로 다른 외모일까.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흰머리가 많아졌고 근육은 줄었으며 뱃살은 늘었다. 활기를 얻기 위해 운동하지만 하면 할수록 회복하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느낌을 갖고 산다. 미래의 모습은 얼마나 달라질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분명하다. 지금의 나를 격려하며 일으켜 껴안는다. 지금 너만 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인생길 위에 최선을 다하느라 고생 많다고, 덕분에 지금 행복하다고 말이다.
3년 뒤의 저는
지금의 저 덕분에
좀 더 행복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