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현실을 유쾌하게 견디는 우리의 자화상
중국 당나라 시기, 양귀비가 사랑한 과일 리즈(荔枝, lìzhī)를 아시나요?
주로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자라는 리즈는 빨간 껍질 속 달콤한 하얀 과육을 품은 과일로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냉동상품을 곧잘 만날 수 있습니다.
남쪽 지방에서 나는 리즈를 신선하게 장안까지 운반하기 위해
한 하급 관리가 무려 2,000km를 달려야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최근 《장안의 리즈(长安的荔枝)》라는 작품으로 재탄생해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황제의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하급 관리의 모습이
오늘날 힘든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우리네 직장인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입니다.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
이들은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볼 '打工人(dǎgōngrén, 다꽁런)'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단어, 打工人(다꽁런)에 대해 알아봅니다.
'打工(dǎgōng, 다꽁)'은 '일하다'라는 뜻입니다.
이에서 비롯된 打工人(다꽁런)은 원래 임시직 노동자, 육체노동자, 혹은 농민공을 가리키는 용어로,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나 고단한 노동자를 뜻하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 인터넷에서 "좋은 아침, 노동자여!(早安,打工人!)"라는
밈이 퍼지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 유행어는 생산직과 사무직을 포함해 고용되어 월급을 받는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신조어가 되었습니다.
요즘 중국 젊은이들은 출근길에 자신을 打工人(다꽁런)이라 부르며
현실을 유머와 자조로 받아들입니다.
힘든 직장 생활을 서로 위로하며, 비루한 현실을 스스로 풍자하는
유쾌한 생존자의 상징이 된 것이죠.
최근에는 단순히 노동자를 넘어,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수많은 젊은이들 또한 스스로를 打工人(다꽁런)이라 부르며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打工人(다꽁런)과 社畜(셔추)는 모두 노동자를 가리키지만,
두 단어에는 묘한 차이가 숨어 있습니다.
“좋은 아침, 노동자여!(早安,打工人!)”는
피곤한 현실을 유머로 승화하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격려의 말입니다.
이처럼 打工人(다꽁런)은 힘들어도 웃으며 견뎌내는, 자발적인 생존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일본에서 유래한 社畜(셔추)은 '회사의 가축'이라는 뜻으로,
회사의 시스템에 갇혀 소모되는 직장인을 가리킵니다.
"나 요즘 매일 야근이야, 그냥 사축 같아"처럼, 냉소적이고 체념이 담긴 표현이죠.
두 단어는 모두 고단한 직장인의 삶을 반영하지만, 그 뉘앙스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는 생존자의 이야기라면,
다른 하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체념에 가깝습니다.
打工人(다꽁런)의 대표적 파생어 및 확장 표현
· 打工魂 (dǎgōng hún, 다꽁 훈): 노동혼. '나는 노동자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담고 있습니다.
· 打工人精神 (dǎgōngrén jīngshén, 다꽁런 징션): 노동자의 정신. 하루하루 버티는 생존력과 책임감을 뜻합니다.
· 无名打工人 (wúmíng dǎgōngrén, 우밍 다꽁런): 이름 없는 노동자. 사회적 지위나 영향력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 打工狗 (dǎgōng gǒu, 다꽁고우): 일하는 개. '일만 하는 하찮은 존재'라는 자기 비하적 표현입니다.
· 打工皇帝 (dǎgōng huángdì, 다꽁 황디): 노동 황제.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직이나 경영인을 비꼬는 말입니다.
· 打工人中的战斗机(dǎgōngrén zhōng de zhàndòujī, 다꽁런 쫑더 짠도우지): 노동자 중의 전투기. 매우 열심히 일하거나 일 잘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양귀비가 리즈를 즐겨 먹은 사실은 기억하지만,
그 리즈를 누가 어떤 노력을 거쳐 운반해 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무명(無名)의 노동자들이
오늘도 내일도 도시의 전철을 타고, 컴퓨터를 켜고, 알람에 일어나 자신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의 뒤를 잇고 있습니다.
“나는 다꽁런입니다((我是打工人). 오늘도 출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