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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의 해피레터 Jul 31. 2022

열 번째 레터 : 대선 결과 날, 나는 운동을 했다.

2022-07-17 발송 레터 


대선 결과 날, 나는 운동을 했다. 


내일 출근을 해야 함에도 눈을 부릅뜨고 결과가 나오길 새벽까지 버텼던 나였다. 까무룩 잠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내가 지지할 수 없는 후보자가 대통령이 되어 있었다. 내가 그 후보를 지지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나는 혐오를 대선 전략 중 하나로 이용하는 후보를 지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여당의 대표가 장애인 시위를 폄하하고 혐오에 앞장서는 걸 보며, 내 걱정이 기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도 그 당시 나는 결과를 보고서도 덤덤하게 내 방으로 들어가 운동을 했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운동할 것이라 결심하면서. 


내가 덤덤하게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한 글을 읽었다. 


‘많은 한국인 여전히 소수자 싫어하고, 외국인 싫어하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픈 거 맞잖아. 장애인 지하철 시위나 택배기사 파업할 때 자기 불편만 말하고 있었잖아. 그래도 나머지 반이 그 혐오에 맞서 싸웠다는 것에 희망을 가지자.’ 


대선 결과가 나온 뒤 정치 상황을 지켜봤을 때, 혐오는 늘 빈자리를 찾아간다고 느꼈다. 여성, 장애인, 노인, 외국인...... 운이 좋아 지금의 나는 혐오의 대상에서 빗겨나가더라도, 혐오는 언제든지 러시안룰렛처럼 나에게 다시 찾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저 글을 읽었을 때 새삼 깨달았다. 


‘그렇구나. 반이라도 혐오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메시지를 던진 거구나.’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가시적인 데이터로 나타난 사람들이 위안이 되었다. 누군가의 존재만으로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저 글을 읽고 깨달았다.

 

사회 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과 통화할 일이 있었다. 현장에 있는 지인은 복지 예산과 지원이 줄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청소년들을 걱정했다. 사회적 지원이 끊기면 아이들은 폭력이 도사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친구는 그 아이들은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죄가 되는 기분일 거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통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먹먹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어야 했다. 


‘그 아이들은 투표권이 없었는데...’ 


정치는 삶과 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요즘 들어 더욱 실감하고 있다. 방역을 해결책으로 말한 전문가들을 조롱한 트럼프가 집권할 때 50만 명 이상이 코로나로 죽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뒤에 미국에서 코로나로 부모님을 잃은 5살 아이를 위해 마을에서 생일파티를 열어줬다는 기사도 읽었다. 기사에 실린 다섯 살 아이의 사진을 보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부모님은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두고 자신들이 코로나로 세상을 떠날 걸 예측이나 했을까? 


대선 결과가 나온 날, 학원에 출근하니 수업 시간마다 대선이 뜨거운 화젯거리로 올랐다. 아이들이 모두 입을 모아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누구를 뽑았어요?’ 투표권도 아직 없는 아이들이 정치에 이렇게나 관심이 많은 걸 보며 속으로 약간은 놀랐다. 선생님이 누구를 뽑았을지 주제로 열성적으로 토론하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자신이 뽑지도 않은 대통령으로 5년 동안 이 아이들의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그걸 가늠해보다가 결심하게 됐다. 


나는 앞으로 오래 살아야겠다고. 


세상의 절반 정도는 앞으로도 혐오의 방식을 택할 것이다. 사회는 혐오의 자리를 빈자리로 남겨두지 않고, 누구든지 데려와 그 빈자리를 메꿀 것이다. 나는 그걸 저지할 절대 숫자 중 하나에 포함되기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혐오 사회를 물려줄 수 없으니까. 혐오의 방식을 택하는 세상을 향해 시퍼렇게 두 눈을 오래오래 뜨고 있어야 할 테니까. 


어쩌면 평생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는 생각도 했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혐오가 훨씬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소수자들이 왜 ‘소수’자라고 불리겠나. 우리의 수는 절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혐오의 방식에 동의해주지 않았던 사람들의 데이터를 떠올려본다. 


이름도, 목소리도, 가치관도 모르고 이야기도 섞어보지 못했지만 ‘존재해주는 것만으로’ 나에게 힘을 주는 고마운 이들. 그런 용기를 받았으니, 나도 내 자리에 버티고 존재함으로써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누군가는 절망에 스러지더라도, 내가 옆에서 버텨주고 있다면 다시 돌아올 용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버티는 원동력을 나도 ‘증오’로 삼지는 않으려 한다. 교회 소모임에서 기도 제목을 나누다가, 소모임 멤버가 대통령 선거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해줬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때 당시 나는 내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는 되지 않으면 좋겠다 염불만 외우고 있었는데 말이다.


떠올려보면 20대 초반의 나는 내가 반대하는 진영에서 실수한다거나, 대중의 비판을 들을 일을 하면 기뻐했던 것 같다. ‘봐봐, 우리가 옳잖아’ 하면서 말이다.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생각 아래, 그저 상대가 고꾸라지길 두 눈에 이글이글 불을 켜고 바라보진 않았나 생각하게 됐다. 


지금은 내가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이 된 분을 위해 간간이 기도한다. 책임을 져야 할 게 많은 자리에 갔으니 잘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 마음을 유지하려면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걸 안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쉽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선 결과가 나왔을 때 운동을 했다. 첫째, 오래오래 살려고. 둘째, 나도 증오를 택하는 쉬운 길을 가지 않으려고. 손쉽게 미워하기보다는 상대를 오래 생각하고,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놓지 않으려면 체력이 되어야 하니까. 


사실 세상은 우리에게 ‘살아야 할 이유’보다는 ‘절망할 이유’를 더 많이 준다. 무고한 이들의 죽음은 나를 슬프게 만들고 때때로 무너뜨리기도 한다. 제작년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전년 대비 25.5% 늘었고, 2020년 1∼8월 자살을 시도하는 20대 여성은 전체 자살시도자의 32.1%로 전 세대 통틀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위구르족,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리아, 에티오피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얹히곤 한다. 지난주에는 미국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제는 우리나라의 대학교 안에서 막지 못한 죽음이 있었다. 


앞으로 나를 자주 절망하게 할 게 자명한 대선 결과.


투표 결과가 나온 TV 앞에 섰을 때, 그 순간 강렬하게 떠오른 한 생각이 내 속에 가득 찼다. 


‘아...... 해윤의 해피레터 오픈을 준비해야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절망할 이유를 더 많이 주는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틈틈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그래야 어떤 재난이 닥쳐와도 나를 지켜서 오래 살 수 있으니까.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전시회에서 만났던 샤갈을 떠올렸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사람들이 학살당해야 했던 시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 그림을 그린 샤갈을. 많은 사람들에게 내 글이 가닿을 수 있게 해야겠다고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실 <해윤의 해피레터>의 진짜 생일은, 공식계정을 오픈한 5월 9일도 아닌, 첫 레터를 발송한 5월 15일도 아닌, 대선 결과가 나온 3월 10일이다. 


이날 가장 강렬히 해피레터를 하겠다는 마음을 품었고,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두 달 동안 준비해서 오픈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오래오래 살아야겠다.


힘든 상황에서도 다정한 말을 건넬 것이고, 열심히 체력을 기르고, 행복하게 글을 쓰며 여기에 있을 거다.

이 세상이 주는 절망에 마음이 꺾여 외로운 사람이 있을 때 나도 여기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 


마음속에 침잠하는 슬픈 일도, 내 무릎을 꺾게 하는 절망도, 평생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느끼는 충만한 이 감정도 내가 살아있어야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감정이라는 것에 감사할 것이다.




Q.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해윤의 해피레터> 시즌 1이 종료 되었습니다~! 시즌 2 첫 레터는 8월 14일에 발송될 예정입니다.  :)

그동안 시즌 1 레터들을 구독해주시고 읽어주셨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푹 쉬고 8월 14일에 시즌 2 레터로 돌아오겠습니다~! 

(브런치 업로드는 8월 21일입니다! 아래 링크로 이메일링 구독해주시면 8월 14일에 이메일함에서 시즌 2 레터를 바로 받아보실 수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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