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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Oct 14. 2021

육아시간 쓰는 동료가 싫어요

마음 편해지는 법을 찾아서.

육아시간: 만 5세 이하의 자녀를 가진 공무원은 24개월의 범위에서 1일 2시간의 육아시간을 받을 수 있음.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긍정적 방향을 믿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세상이 내가 누리는 세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좋은 제도가 생겼지만 내가 쓸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력 상황이 좋지 못했고 대민 서비스 분야에 근무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예외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육아시간을 쓸 수 있었다. 일선 근무자가 아니었고 업무 마감은 4시 반이었으니 하루 2시간은 아니더라도 한 시간 정도는 얼마든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쓰지 않았던 것은 함께 일하는 직원들 때문이다. 내가 먼저 가면 누군가가 분명 더 일을 해야 하는데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우린 한 팀이니까. 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그렇게까지 아이들과의 시간이 절실한 건 아니니까. 하면서 쓸 수 있는 육아시간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동료가 육아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기존에 자리를 잘 잡고 있는 나도 쓰지 않는 육아시간을 한 두 번이 아니라 꽤 잦은 빈도로 썼다. 게다가 그녀가 육아시간을 쓸 때마다 내가 대무를 해야 했는데 그녀는 단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슬슬 화가 났다.

그녀는 웃으며 “너도 써, 육아시간” 이란 말을 했다. 오. 마이. 갓. 뭐 하자는 거지? 그녀의 사정을 이해했다. 정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고 그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제도이기에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내가 대무를 하는 상황에서 최소한 내게는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 하지 않나? 하는 속 좁은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동료들이 “야, 너는 육아시간 없어? 너도 써야 되는데.”라고 말했다. 속 시원히 너도 쓰라는 게 아니고 너도 써야 되는데 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한 팀에서 어떻게 두 명이나 그래요. 저는 뭐...”라고 말끝을 흐렸다. 나에게 육아시간을 줄 수 없으면 그녀 욕이나 실컷 해줬으면 싶었다. 아니 걔는 어쩜 그렇게 지만 생각하니. 아무리 제도가 있다지만 그럴 거면 왜 직장에 나와, 그냥 쉬지. 뭐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남의 입으로라도 듣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옹색해진다.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기보다는 맞아, 그때 내 마음이 그랬지. 참 억울했겠다 싶다. 하지만 감정과 달리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던 그녀의 곧은 마음이 좀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누가 누구에게 미안할 문제가 아닌 자신의 권리를 찾는 차원의 일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육아시간’의 권리를 찾아 쓰는 것은 누구에게 미안할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고 나도 내 권리를 찾아 쓰면 될 뿐 그녀를 비난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그 시절 나의 권리를 찾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지 못하고 육아시간 쓰지 않은 것을 훈장처럼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나의 딸이 사는 세상에선 육아시간을 잘 사용했던 그녀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기억될 텐데 말이다.


나는 욕먹기가 싫었다. “걔는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애야.” 이 문장을 듣기 위해 많은 것을 참고 견뎠다. 내가 쓰지 않았던 육아시간은 그런 잊힐 만한 문장들로 보상됐다. 그때는 그 보상만으로도 만족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아이가 자라 육아시간을 쓸 대상이 아니게 됐지만 다시 다른 동료가 육아시간을 써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아, 솔직히 마음은 괜찮지가 않았다. 조금 배가 아팠고 다시 한번 옹졸한 사람이 될까도 싶었지만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먼저 말했다. “좀 적응하면 고민 말고 육아시간 쓰세요. 육아시간 쓰는 걸로 뭐라고 하는 사람 없으니 필요할 때 쓰시고 평소에도 칼퇴하세요.” 내뱉으니 좀 후련했다. 모르겠다. 난 이제 고민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이 한마디로 세상을 변화시킬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내 딸이 사는 세상이 더 좋아지는데 일조하고 싶은 마음으로 동료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차피 내 호의 따위 없어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이니까. 그냥 내 속 편하기 위해 말했다. 육아시간 쓰지 못했던 라떼이야기를 하지 않고 편히 내던지고 잊고 싶었다. 사실은 다 그런 거다. 자기 편하자고 하는 이야기. 나 잘 살자고 하는 일들. 나는 요즘 그렇게 삶을 꾸려간다. 미화하지 않고 나 좋자고, 나 편하자고 하는 일들이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을 보며 조금 안도한다. 내 행복이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무엇을 더 기대하고 싶기도 하고. 뭐 그렇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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