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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Sep 11. 2021

팀장님처럼 살기 싫어요.

여성 직장인, 롤모델의 부재일까?(김세희 단편 '드림팀')

올해 40살이라는 나이는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 마흔이 되면 사십춘기가 시작된다느니 30대와는 확연히 다른 무엇이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다행히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내게는 마흔이라는 나이보다 ‘팀장’이라는 직급이 더 큰 변화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주어진 업무만 하다 팀장의 자리에 앉게 되니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해 갑자기 아무 일도 할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업무가 내일 같았고 또 한편으로 모든 업무에 주인이 있는 것 같아 손을 댈 수가 없었는데 헷갈리는 건 업무 배분뿐만이 아니었다. 점심 외식이라도 하려고 나가면 혼자 뒤에서 터덜터덜 걸어야 할지 팀원들에게 말 붙이며 곁에 가야 할지 또는 더 어려운 분들 뒤를 종종거리며 따라가야 할지 갈등했다. 팀원도 아니고 간부도 아닌 홀로 동떨어진 기분이 드는 게 당황스러웠다. 팀원 시절에는 팀원들끼리 팀장 욕도 하고 팀장이 휴가를 가면 부재만으로 자유를 즐기며 즐거운 시간이 있었는데 막상 내가 그 팀장이 되니 혼자만의 섬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내게 누군가의 얘기를 하지 않았고 다른 팀장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분위기는 또 아니었다. 괜히 이야기를 잘못 꺼냈다 가벼운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사사로운 이야기는 서로 삼가고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누가 더 잘 해내는지 묘한 비교만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팀원이던 시절 꼴 보기 싫어했던 애매한 경계선에서 개입하는 것도 아닌 방관하는 것도 아닌 그런 자세로 말이다. 늘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조심했지만 내 기준에 이전보다 편한 시스템을 보면 자꾸만 나 때는…….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게다가 딱 꼬집어 지적하기엔 어렵지만 묘하게 거슬리는 행동에 대해선 회사 밖 친구들에게 '사회생활' 운운하며 ‘요즘 애들’ 타령을 하는 순간도 이따금 찾아왔다.


“그래. 근데 자기도 알잖아, 한국 사회가 그렇잖아.” 그녀는 항상 한국 사회가 그렇다고 했다. 또는 사회생활이 그렇잖아. 사람들 시선이 그렇잖아. 남자들이 다 그렇잖아. 한국 사회에서 아직 여자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었다. 여기 있으면 팀장님처럼 될 것 같아요. 선화는 생각했다. 전 팀장님처럼 살기 싫어요. 팀장님도 싫고 팀장님 인생도 싫어요. 팀장님은 영원히, 아무 변화도 없이 여기서 일하시겠죠. 근데 전 아니에요. 전 싫어요. (드림팀, 김세희 p150)


김세희 작가의 단편 '드림팀'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후배를 아끼는 팀장 임은정과 신입사원 선화 씨의 이야기다. 팀장은 고시원에 방을 구했다는 선화에게 “그 얘기는 하지 마.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니까. 누가 물어보면 그냥 방 구했다고만 해”(p141)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마른반찬이나 과일을 챙겨주며 애정을 베풀기도 한다. 임은정의 모습은 분명 나이스하고 깔끔한 상사의 모습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단편을 읽는 내내 나는 자꾸만 임은정을 대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 그 말은 하지 말지...’ ‘선화 씨 저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요...’ 이런 혼잣말을 불쑥불쑥 내뱉고 있었다. 임은정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팀장의 자리에 올랐으니 자신은 누군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선화를 도왔지만, 선화가 임은정처럼 살고 싶은지는 묻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방식은 여러 가지인데 회사에서는 승진만이 유일한 길처럼 여기는 것, 자신의 방법이 최고의 솔루션이라는 생각이 문제였다. 설상가상으로 사회 초년생 선화는 팀장님처럼 살기 싫다는 생각만 할 뿐 다른 롤 모델을 찾지 못한다. ‘그녀는 올해 마흔네 살이고, 새로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자기가 받지 못한 축복과 격려를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선화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p156)라고 말하는 선화의 이야기를 보며 더 안타까웠다. 팀장님을 축복해 주어야 진정한 연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끝내 응원하지 못하는 마음. 거기까지는 선화의 몫이 될 수 없었다.


 나는 어느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걸까? 발만 동동거리며 안타까워하는 입장으로 굳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조바심을 어쩌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사실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임은정이 불쌍했다. 자신이 원하는 롤모델을 만나지 못한 선화 씨는 어느 순간 임은정을 닮아 갈지도 모른다. 나 역시 내가 본 팀장님들을 닮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래도 책 속의 임은정과 선화는 현실의 내가 아니라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냥 그것뿐이다.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는 것, 타인은 나와 같지 않음을, 내 인생과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 말이다.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선화가 팀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축하하지 못하는 것은 옹졸하지 않다. 선화의 때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임은정이 선화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임은정의 때인 것이지 선화의 용서의 타이밍은 아닌 것이다. 서로의 시간이 마주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기적과 같다. 지나고 나서야, 내가 그 입장이 되어서야 서로의 시기를 이해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자신이 겪지 않은 시간임에도 나를 존중하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분명 그런 사람이 있다. 유니콘처럼, 아니 그보다는 좀 더 선명하게 만날 수 있는 존재. 그게 우리 직장생활의 희망이며 롤모델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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