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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Sep 26. 2021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좋은 상사의 조건

드러내지 않음의 미학

“능동감시 대상자나 수동 감시 대상자에 대한 확인서가 따로 있을까요?”     

10번이 넘는 시도 끝에 연결된 보건소 직원에게 바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아뇨, 확인서는 따로 없습니다.”

어렵게 연결된 전화가 끊어질까 나는 틈을 주지 않고 복무지침에 필요한 사항들을 질문했는데 결론은 능동감시나 수동 감시나 그저 감시대 상일뿐이라 정형화된 확인서나 지침은 없고 대상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문자발송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왕 전화가 연결됐으니 이것저것 다 묻고 싶었지만 전화를 받는 직원이나 나나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결국 감사하다는 말과 서로가 할 수 있는 조치가 없음을 아쉬워하며 통화를 끝맺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2천 명이 넘어가면서 가끔 한 두 명 상황보고를 하던 업무의 강도가 점점 세지며 주말, 휴일에도 보고가 이어졌다. 접촉 경로도 다양해지면서 내게 질문도 많아졌는데 코로나 관련 업무는 사실 내일이 아닌 잠깐의 대무였기 때문에 더욱 버거웠다. 틈나는 대로 지침을 확인하고 연결이 어려운 보건소와의 전화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옆의 직원이 나의 통화를 듣더니 갑자기 “팀장님,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대신 알아봐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한다. 음. 그렇다. 사실 복무처리를 담당하는 직원은 따로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알아본 것은 상황보고를 위해 해당자와 내가 가장 먼저, 그리고 자주 통화를 하기에 한 번에 알려드려야 할 것을 정리해드리기 위해서였다. 이건 네가, 이건 내가 정해진 업무의 경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누는 것이 더 번거롭고 비효율적일 때는 효율적인 처리를 선호하는 편이라 내가 한 번에 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을 알아주다니 나야말로 갑자기 고마워졌다. 게다가 그 주임님은 주변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일에 파묻혀 지내는 스타일이어서 사무실 돌아가는 상황을 혼자만 모르고 있을 때도 많은 분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나는 평소 우리 과 직원들이 좀 더 빨리 퇴근하기를 바랐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좋을지 고민하곤 했는데 갑자기 그 고민이 해결된 것 같았다. 내가 도와줄 것이 없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볼 때마다 거의 다했으며 괜찮다는 말을 하던 직원들이었기에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선배가 좋은 선배일까? 고민에 이렇다 할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이 많은 지금 오히려 답을 조금 찾은 것 같다.      


직장에서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은 업무처리가 깔끔한 사람일 것이다. 직장은 동호회가 아니기에 취미나 인성보다는 일처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사항인데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전체적인 업무파악이 가능해야 한다. 딱 내가 맡은 부분, 내 업무만 아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볼 줄 아는 눈, 세세한 지침까지는 모르더라도 일 센스가 있어서 상황 정리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사로서 합격이다. 상사로서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과, 동료로서 일하기 좋은 사람, 부하직원으로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의 조건은 모두 다르겠지만 정확한 업무처리와 전체를 보는 눈을 가진 직원이라면 모두가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렇게 정리 후에도 생색을 내거나 가르치지 않고 싱긋 웃을 줄 아는 상사라면? 사실 교통정리를 해 주는 상사는 자주 만날 수 있는데 그 후처리가 앞의 잘한 점을 모두 상쇄시키는 분들이 많다. 일장 연설을 통해 가르치는 사람, 앞으론 네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사람, 내가 아직도 이렇게 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냐며 나무라는 사람, 타 부서에 자신의 업무능력을 과시하며 직원의 부족한 점을 알리는 사람 등. 나는 상사가 된 것이 처음이라 아직 무언가를 대신 해결해 준 경험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고민하고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내가 겪은 이 날의 경험과 좋았던 분들을 떠올리면 기준을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교회에서 초등부 교육 교사로 봉사를 하던 시절, 모두가 좋아하던 부장님이 계셨다. 너무 좋다길래 어떤 분인가 궁금했는데 인간적인 좋음을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아쉬워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분의 명성과 인기는 바로 그 ‘드러나지 않음’에서 오는 것이었다. 자주 관여하지 않으시는 것, 회식에 참여하지 않으시는 것, 어렵고 큰일은 뒤에서 알아서 처리해주시는 것, 가끔 카드만 주고 젊은 선생님들의 모임을 지원해주시는 것이 그분의 인기 비결이셨다. 으음? 누군가를 좋다고 할 때 그런 이유로 좋다는 게 말이 돼? 부장님의 입장에서 드러나는 좋은 점도 많을 텐데 그분의 부재가 인기 비결이라니 너무 서운하시겠다  생각는데 이제는 조금 알겠다. 그분의 업적은 사실 이런 것이었다. 자신의 부서원들을 전적으로 믿는 마음,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아는 판단력, 생색내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믿고 추진하는 자신감, 타인의 인정과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올곧은 가치를 가지고 부서를 이끄는 리더십.     


좋은 상사로 특별한 무엇을 해야겠다는 그 별다른 액션이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냥 내 일을 자연스럽게 하고 벌어지는 문제를 정확히 해결하면 된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정리를 한답시고 가르침은 금물!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는 조언은 글쓰기, 육아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적용되는 Tip이다. 정확한 일처리, 센스 있는 업무 파악, 싱긋 웃을 줄 아는 여유를 갖추고 그저 보여주자! 그럼 부서원들 뿐 아니라 내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이전 09화 팀장님처럼 살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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