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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Aug 26. 2021

워킹맘이지만 미안하지 않아요.

아이의 감정챙기기

"어머님, 영어 단어 신경 써 주셔야 돼요. 단어를 많이 아는 아이와 모르는 아이는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확실히 달라요. 어머님이 전에는 알아서 해주셔서 신경 쓸 게 전혀 없었는데..."

복직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전화를 받는 거지? 선생님의 말씀이 신경 쓰였지만 초등 1년을 함께 보내보니 앞으로는 내가 '알아서 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전보다 못하다는 말이 듣기 좋진 않았지만 지금 또 나서면 계속해서 내가 '먼저' '알아서' '챙겨야' 할 것이다.


휴직 중에는 코로나19 전염병이 심해 24시간 가정보육을 했다.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실제 등교하는 날은 손에 꼽힐 만큼 적었고 둘째는 다니던 유치원을 퇴소하고 집에서 1년을 보냈으니 정말 100% 가정교육이었다. 유치원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도 했고 학교를 자주 못 가니 교육 공백도 생길 것 같아 제대로 기초를 잡아주기로 했다. 통용되는 말로 하자면 선행학습을 한 것이다. 우리 아이가 뒤처지지 않게, 남들 다 아는 것을 혼자 몰라 당황하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공부를 가르쳤다. 나는 시스템 만들기에 강한 편이라 서로 다소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지금 학습 습관을 만들어 복직 이후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아이들의 성향에 맞는 문제집을 직접 고르게 해 매일 학습 목표와 분량을 정해 루틴을 만들었고 스스로 성실 보석을 채워가게 했다.


 선행학습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엄마라 해도 늘 아이의 능력을 체크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이번 기회에 아이들과 나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동시에 엄마와 공부하며 아이의 자신감을 세워주는 것에 집중했다. 아이는 아는 만큼 신나 했고 배우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다. 모두에게 좋은 시기였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선행은 거기까지 였다. 기초교육과 학습습관 만들어주기.


당분간 학습을 위한 학습에는 조바심 내지 않기로 했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우리 아이가 뒤쳐졌구나 싶어 퇴근 후 단어 시험을 본다면 그건 엄마의 조바심이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을, 내 욕심을 덜어내야 했다. 아이들은 창피한 감정을 알고 친구들과 비교해 부족한 자기의 모습을 알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엄마가 확인사살시키며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의 감정에 집중했다. "요즘 어려운 게 뭐야?"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도와줄 테니 얘기해야 돼" 하고 말해주었다. 어린 시절 내가 느꼈던 어려움을 함께 이야기해주는 것을 빼놓지 않으며.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기억은 외로움과 두려움의 감정이었다. 잘하고 있을 때도 외로웠고 못할 때는 혼날까 봐 두려웠다. 특별히 부모님이 상처를 주어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의 처리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어,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세상을 훨씬 따뜻하게 바라봤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되고 싶은 엄마는 편견이 없는 엄마다.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수용해주고 무엇이 되고 싶다 해도 응원해 줄 수 있는 엄마.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이 내게 안전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했기에 복직 이후에는 학습 상황보다는 스스로 겪어나가며 느끼는 어려운 감정을 돌봐주려고 노력했다.


엄마따라 우리모두 와식 생활자.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자라면서 자연스레 겪는 감정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면 이후 교육 목표는 아이가 정하면 된다. 공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습이 필요할 때가 있고 부모님의 지지가 필요할 때가 있으며 그저 자유롭게 아이들의 선택을 기다릴 때가 있기에 그에 맞추어 흘러가면 된다. 우리가 쌓아 온 시간만큼 서로를 믿는 마음,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평일엔 일상의 감정을 챙기며 주말이면 함께 즐기는 시간을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 위주의 체험이 아니라 엄마, 아빠의 관심사도 알려주며 선택하게 했고 더 적극적으로는 지인을 동원하여 엄마 아빠가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분야를 체험하기 위해 노력했다. 신랑과 나는 지독히 평범한 가정의 첫째로 태어나 경험이 많은 편이 아니기에 교육부나 지자체에서 모집하는 천문학, 독서교육, 승마체험 등을 보는 즉시 모두 신청했다. 우리 역시 경험해 보지 않은 것기에 덩달아 기대하는 마음이 커졌다. 나 역시 얼마 전에야 처음으로 천체 망원경으로 태양의 흑점을 관찰했고 아이 승마수업에서 어깨 넘어 기승에 대해 배웠다. 엄마 아빠도 해 보지 못한 걸 너는 경험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니 라는 마인드가 아니라 아이 덕분에 우리도 함께 배운다는 생각으로 재미있게 참여하고 있다. 일하는 엄마라 부족하다, 잘 못 챙기고 있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부모와 아이,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라 생각하며 함께 채우면 된다.


내가 해보지 않은 것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또한 내가 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를 제한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함께 자란다. 일하는 엄마의 아이라 어느 시점, 어느 부분은 기준에 미치지 못할 수 있지만 결국 자신의 동기에 따라 동력을 삼아 나아갈 것을 믿는다. 더불어 아이들이 나를 보며 배워갈 것들을 기대한다. 엄마의 역할에 회사생활, 사회적 관계, 여가생활들이 당연하게 자리 잡아 우리 아이들이 계속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제든 아이와 함께 배우고 경험하는 부모로 기억되길 바란다.


 


더 어린시절 아이가 바라보는 나에 대한 글.

https://brunch.co.kr/@mintblue9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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