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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Oct 02. 2021

받아들여야만 하는 직장 내 보직이동

실컷 울어버리고 쿨하게

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아. 내게 울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자마자 눈물이 베어 나왔다. 출근길인데. 퇴근길도 아니고 출근길인데 갑자기. 그대로 눈물이 흘러나오게 할 수 없어 마른침을 삼키고 코를 훌쩍였다.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의 준비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울고 있을 때가 아니다.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마다 긴장이 돼서 숙면이 어려웠다. 긴장이 피로가 되어 금방 곯아떨어졌지만 나의 무의식은 새벽 3시면 어김없이 나를 깨웠다. 현재 하고 있는 업무를 맡은 지 7개월이 됐고 역시 한 달 동안은 새벽 3시 기상이었다. 내가 맡았던 업무는 어디에나 걸쳐지는 일이라 “이것도 제가 해야 하나요?” “네? 이것도 제 일이라고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어쩜 이렇게 나를 사방에서 부를 수 있나 짜증도 났지만, 이전에 해보지 못한 업무에 대한 호기심과 나의 커리어가 점점 레벨업 된다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  "문제가 있다고요? 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 대부분 즐겁게 대답하며 도장 깨듯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남들은 어렵게 하는 일을 내가 재밌어한다는 점이 더욱 신나서 똑소리 내며 발랄하게.


 최근 부서 내 다른 팀장님이 빠지면서 일시적으로 업무를 더 받게 됐다. 한시적 업무 조정이라 했으니 크게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였는데 불과 7개월 만에 일시적이 아닌 확정적으로 내가 그 팀으로 이동하게 됐다. 더 재밌는 것은 내가 본래 하던 업무에는 두 사람이 투입되어 2인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 상황. 어찌 보면 힘든 일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업무 강도와 별개로 업무 스트레스가 높은 자리였고 무엇보다 난 새로운 게 더 어려운 사람이다. 새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무능한 나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든 사람, 매번 레벨업하며 잘 나가기보다 그저 익숙한 분야에서 지원해주는 게 편한 사람이 나였다. 이게 다 웃으면서 다닌 내 탓이라며 후회해보지만 어떤 것도 돌이킬 수 없었다.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될 때마다 두려움의 감정이 80% 이상이었지만 '경계 확장'이라는 이성적 목표를 가지고 하나씩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못한다고 도망쳐봐야 모양만 빠질 뿐이고 조직은 결정을 번복하는 법이 없으니 직장인의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좀처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7개월 만에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니 영 이성적 회로가 작동되지 않았다. 아니 작동은 하나 감정적인 부분이 너무 강렬히 저항을 하고 있달까? 그러니 감정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배출해 주고 싶었다.


사무실에선 당황한 기색을 굳이 감추지 않았지만 역시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어쩌겠나. 나를 위해서도 팀원들을 위해서도 내가 중심을 잡아야 했다.     


울어버려! 울어버리자고! 너무 짜증 난다고! 울기라도 하자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며칠 동안 내 마음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지만 어이없게도 울 시간이 없었다. 피곤에 지쳐 쓰러지고 새벽에 깨고를 반복하느라 충분히 내 마음을 알아주고 불평하고 불안해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나는 무엇을 하면 행복한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의 행복에 관대하고 집중하는 편이니 금세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인데 지금 더 시급한 것은 나의 힘듦에 몰입하는 것이다. 나 정말 힘들어요. 나에겐 힘든 일이에요. 당신들 기준대로 펼쳐지는 이 상황이 무척 짜증 나요.라고 원 없이 불평불만하며 내 마음을 온전히 토로하고 싶었다. 내가 주도한 상황이 아니기에 감정 배출 또한 내 타임라인에 따라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


시간을 내야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기쁨을 찾기 위해서만 시간을 낼 게 아니라 마음껏 불평하고 마음껏 소리치고 목청껏 울기 위한 시간도 내야 한다. 휴식이 안주하지 않을 힘을 얻는 시간이라면 나는 그 휴식을 기꺼이 우는 데 쓰고 싶다. 그런 날이 꼭 있다. 어쩌면 여러 날...


일요일은 휴식의 시간이지만 그 휴식은 하루 종일 자는 것, 늘어져 있는 것, 빈둥거리는 것, 몸을 회복하는 것을 포함하는 동시에 언제 마음이 편한지, 언제 심장이 뛰는지, 어디로 마음이 가는지를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했던 거지요. 그에게 휴식은 안주가 아니라 안주하지 않을 힘을 얻는 시간이었어요.
[정혜윤, 인생의 일요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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