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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Oct 18. 2021

일하는 것이 괜찮기 시작했다.

함께 쓰기의 힘

처음부터 출근이, 직장생활이 가벼웠던 것은 아니다. 겁쟁이에 세상 걱정은 모두 짊어지는 나였기에 2년의 휴직을 마치고 출근하는 마음은 흡사 어린이집 처음 가는 미취학 어린이와 비슷했다. 누가 나를 괴롭히진 않을지, 업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아닐지 계속 부정적인 상황을 떠올리며 심란해했으니까. 늘 그렇게 최악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보는 소심한 사람이었던지라 회사는 생각보다 평온했음에도 출퇴근만으로 고단했다. 퇴근해 씻고 나면 무섭게 잠이 몰려와 그대로 무력하게 누웠지만 새벽 두세 시쯤 다시 눈을 뜨곤 했다. 무엇이 불안했을까? 밤이 끝나고 아침이 찾아와 의미 없이 출근하는 삶이 싫었고 불안해하는 연약한 마음이 싫었다.    

  

나는 나의 패턴을 알았다. 결국 잘 견뎌내겠지만 적응하는 내 마음을 잘 돌보고 싶어 복직 전 필사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복직 한두 달 전부터 불안으로 요동치는 마음과 복직 후 여전히 정신없는 마음은 힘없는 글씨와 축 처지는 문장 그대로 표현됐다. 월든을 필사하고 있으면서도 내 마음은 평온해지기는커녕 덜덜 떨리기만 했다. 그럼에도 계속했던 것은 불안한 마음이라도 볼 수 있는 내 시간이 좋았기 때문이다. 감정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글을 통해 나를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훗날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출근길 힘이 되길 바란다며 커피 기프티콘이나 각자 마음이 담긴 선물을 보내주었다. 간간이 행복했고 그런 마음을 기억하며 필사를 했다.


조용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대자연 속에,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속에, 또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모든 경치 속에 진실로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주는 공기 그 자체처럼 무한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우호의 감정이었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은행나무]     


월든의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가 현재 내 상황 같았고 간간이 도착하는 마음을 통해 ‘자애로운 우정’을 느꼈다. 선물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들의 마음이 고마워 순간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썼는데 함께 필사하는 리더가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왔다. '설명할 수 없는 우호의 감정'을 남한산성에서 보낸다고. 서로의 글을 멀찍이 플랫폼으로 구독만 하고 있던 사이에서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우리는 가까워졌다. 흔한 커피 기프티콘이었지만 내 글을 바라보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우리는 글이 있었기에 무리 없이 서로를 알아갈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혼자 배설하듯이 습관적으로 썼는데 독자가 있으니 좀 더 맥락이 있는 글이 쓰고 싶어졌다. 복직이라는 새로운 상황에서 평생 익숙했던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은 큰 힘이 되어 함께 글쓰기 모임을 만들자는 그녀의 제안에 덥석 손을 잡았다.


복직은 나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능력을 보여줘야 했고 그 과정에 엄청난 부담이 따라왔다.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의미 있었고 힘든 일들은 모두 글감이 되었다. 그리고 내 글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 되어 억울한 일도, 속상한 일도 다 괜찮았다. 그 모든 사건과 감정이 엮어져 한 편의 글로 탄생한다는 사실이 더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일하는 것이 괜찮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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