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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e Aug 20. 2021

1.르네상스의 명화들은 왜 홀딱 벗고 있죠?(1)

-비너스는 벗고 있어도 야하지 않다?-


1.르네상스의 비너스는 왜 홀딱 벗고 있는 거죠?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 비너스는 벗고 계셔도 야하지 않습니다.-     

 저 홀딱 벗은 여자분은 여신 비너스이십니다. 이 비너스의 실제 모델은 당시 피렌체의 미의 여신으로 뽑혔던 시모네타 베스푸치입니다.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유명한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먼 친척뻘로 베스푸치 가문의 며느리였습니다) 아무리 미의 여신으로 뽑혔다고 해도 홀딱 벗은 몸에다 남의 집 귀한 며느리 얼굴을 합성한 그림을 별장 벽면 장식에 쓰겠다고 주문한 메디치가 사람들 정신세계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요.

 제가 좋아하는 여배우 아무개 씨의 얼굴에다 글래머한 나체를 합성한 사진을 집 벽에 걸어두고 자랑삼아 SNS에 찍어서 올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뒤에 벌어질 일은 상상만 해도 무섭습니다. 오늘날에 기준으로 보면 전 당연히 사법처리 대상입니다. 근데 메디치가의 별장에 있었던 이 그림을 왜 아무도 이 그림을 문제 삼지 않았을까요? (메디치가의 별장은 연회로 자주 사람들이 모였으니 당시 여러 사람이 이 그림을 봤을 텐데 말이죠!)

 답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이분은 시모네타 베스푸치가 아니고 비너스이기 때문입니다. 제목에다가 떡하니 비너스라고 붙여 놓았으니 비너스입니다. (마치 요술 방망이로 “비너스가 되어라. 얍!” 하면 비너스가 되는 것처럼 제목만 붙이면 비너스가 되는 것이죠~~~!! ) 비너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의 여신입니다. 이분이 그냥 여자 사람이면 야한 거지만, ‘비너스’ 그러니까. 여신은 성스러운 분이시기 때문에 오히려 야하다고 말한 그 사람이 음탕한 사람이 되는 기적의 논리지요. 게다가 서양에서 가슴은 성적 상징보다는 다산의 상징이죠. 좀 멜랑꼬리한 부분인 음부는 머리카락과 손으로 가려주시는 매너까지 보여주셨으니 한마디로 이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No Problem~~~!!!(어디 감히 성스러운 여신님께~~!!! 불경스러운 생각을 한 네 사상이 더 이상하다~요놈) 요런 식이었다는 겁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기준(외설과 예술의 가이드라인이라고 해야 하나?)은 꽤 오랜 시간 서양미술사 불문율처럼 지켜집니다.


 못 믿으시겠다고요? 제가 두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이 가이드라인을 통과해서 인정받은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불경스럽고 미풍양속을 해친다며 사람들이 하도 부수려고 달려들어서 전시회를 할 당시에 사람 손이 닿지 못하도록 높은 곳에 걸어둔 작품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는 두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뭐가 이런 차이를 만든 건지 그림만 보고는 도저히 이해가 안됐습니다                                                                            

티치아노 1538년
마네  1863년

 

두 그림 모두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누드입니다. 음부는 가려주시는 센스까지 보여주셨네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그림의 모델로 나선 두 여성은 하나는 창녀였고 하나는 화가이자 모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창녀를 그린 것이 대단한 자랑거리는 아니었지만, 딱히 드러내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제목이 문제였죠.


 티치아노 그림의 제목은 우르비노의 비너스입니다. 이 그림에 주인공인 여성은 창녀였습니다. 창녀든 뭐든 제목이 비너스니, 당시 기준을 통과(pass)할 수 있었죠.~~!!!


 마네는 티치아노의 비너스에서 영감을 얻어서 올랭피아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마네 그림은 당시 미술의 기준으로 봤을 때 너무 평면적으로 그린 것도 문제지만, 그건 이 그림의 제목에 비하면 너무 사소한 문제였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올랭피아입니다. 올랭피아는 알렉산드로 뒤마가 쓴 당시 유명소설인 춘희에 나오는 창녀의 이름인데 그녀는 순결을 파는 것에 수치심도 없이 얼굴만 믿고 막 나가는 헤픈 여자였죠. 이 소설이 유명해지면서 그 아류로 수없는 연극이 나왔죠. 당연히 올랭피아라는 이름도 유명세를 떨쳤죠. 당시 사람들에게 올랭피아라는 이름이 무엇을 연상시켰는지 충분히 이해되시죠? 이 그림의 실제 모델은 빅토린 뫼랑은 나중에 미술인의 등용문인 살롱전까지 당선된 화가입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누구인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놈의 불경스러운 제목이 문제였던 거죠.


15세기 르네상스에 만들어진 이 기준이 19세기 화가인 마네의 발목까지 잡았으니 이 어이없는 고정관념은 꽤나 오랫동안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었나 봅니다.




-말도 안 되는 세상이 말도 안 되는 고정관념을 만든다-


 르네상스가 어떤 시대입니까? 그림에서 여성분이 훌러덩 벗고 계신 것도 황당한데 이름만 여신으로 붙여주면 괜찮다니요!!! 말이야! 방귀야! 앙드레 모루아는 프랑스사에서 이런 르네상스의 모순을 인간의 속살에 신앙의 옷을 입혔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보티첼리와 티치아노의 비너스에 딱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르네상스 사람들은 이전 중세 사람들처럼 신앙은 있었지만, 신자로서의 삶은 내려놓고 살았습니다. 그냥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고 살았던 거죠.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아직 신실한 그리스도인 행세를 해야 했고, 그 와중에 죽고 난 다음에 지옥에 가는 건 두려워했죠.


  ‘모든 것의 가슴에 매혹하는 사람을 심어 넣어, 종족을 좇아 열심히 자손을 생산하고 만드십시오.’ 쾌락을 철학의 근간으로 삼는 에피쿠로스 철학책에 실린 한 구절입니다. 아까 보신 보티첼리의 비너스도 이 고대 그리스 시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기독교 시대에 그리스의  에피쿠로스 철학책을 보는 건 당시 간음 보더 더 큰 죄였습니다) 르네상스인은 사랑에 거침이 없었고 인간의 육체에 대해서도 수치심보다는 아름다움을 뽐내는 수단으로 상대를 유혹하는 도구로 거침없이 사용했습니다. 흑사병으로 인구가 많이 감소한 뒤여서 그런지 전쟁 후에 나타나는 베이비붐처럼 아이들 갖는 것이 최대의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문제는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에서도 거리낌 없이 그걸 했다는 겁니다.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이지 죄가 아니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교회에서는 교리에 따라 간음은 여전히 큰 죄였습니다) 교회 밖만 나오면 자유롭게 살았던 르네상스인이니 사생아로 태어나는 것도 인생에서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중세가 오로지 신만을 찾으며 구원을 얻기 위해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았던 금욕의 시대였다면  르네상스는 아름다운 여인의 나체에 대해 부끄러움은커녕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쾌락의 시대로 변해버린 것이죠.      


이전까지 알던 르네상스와 연결이 잘 안 된다면 예를 한번 들어드리겠습니다.     

  옆집 아이 네이버(Neighbor)가 중학교에 갔다고 칩시다. 아파트 단지 안의 유치원, 초등학교를 졸업한 네이버는 약간 순진한 범생이 녀석이었죠. 근데 중학교에 가서 다른 동네 친구 안순범과 친구가 됩니다. 네이버는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짓의 맛을 알게 됩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죠? 맞습니다. 엄마한테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해봤던짓 도서관 간다고 거짓말하고 딴 길로 새는거죠. 네이버는 피씨방에 게임을 하러 갔습니다. 친구들과 게임을 하면서 라면을 먹고 중간중간 핫바도 먹으니 이곳이 바로 천국인가 싶었죠. 하지만 성적이 뚝뚝 떨어지면 엄마한테 들켜서 된통 혼날 게 뻔한 일입니다. 네이버를 들키지 않을 방법을 연구합니다. 수업시간에 수업에 집중하고 쉬는 시간에 예·복습을 철저히 해서 성적을 올리면서 방과 후에는 피시방에 가는 거죠. 부모님께 들킨다고 해도 성적 향상의 원동력이 몰래 간 피시방이라면 어쩜 부모님이 봐주실지도 모르니까요.


 르네상스의 사람들도 네이버처럼 신께서 금지한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면죄부를 사고 교회에 제단화를 기부하는 것을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네이버가 피시방에서 들키지 않고 게임을 하기 위해 공부를 더 열심히 한 것과 비슷한 이치겠지요. 네이버와 같이 열심히 게임을 하고 성적을 올리는 아이가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르네상스 시대에는 일어났습니다. 교회에서 하지 말라는 에피쿠로스 철학, 고리대금업, 남의 여자 탐하기, 심지도 동성연애 등 쾌락에 빠져 죄를 짓고, 성직자들에게 죄를 용서받기 위해 돈으로 면죄부를 사고 교회의 제단을 화려하게 꾸며서 바쳤습니다.

성직자들은 자기가 뭐라고 돈과 예술 작품만 받치면 죄를 용서해주고 천국에 들어가는 약속까지 해주었으니 정말 양쪽 다 어이가 없습니다. 돈을 준다고 그런 죄를 용서해준 교회도, 그런 나쁜 짓을 하면서 돈만 내면 죄가 용서될 수 있다고 믿은 신도들도 말이 안되기는 마찮가지죠.

이런 세상이니 모순덩어리 고정관념을 만들어 냈겠죠. 어쨌든 이런 모순 덕분에 르네상스의 예술이 더 꽃 피울 수 있었다니 뭐가 말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말하다 보니까 저도 헷갈리네요.

 정신적으로는 기독교를 육체적으로는 그리스 철학의 자유로운 삶의 살고자 했던 거죠. 기독교를 믿었던 르네상스 시대에 그리스 여신의 나체와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이 많은 것이 바로 이 이유입니다. 심지어 교황이 계신 성 베드로 성당에도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있습니다. 라파엘로의 최고의 명작 아테네 학당은 그리스의 철학자들을 그린 것입니다. 성 베드로 성당에 그것도 교황 직무실에 이교도 학자인 그리스 철학자를 그려놓은 거죠. 이런 오묘한 시대가 바로 르네상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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