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지만, 르네상스보다 좀 더 이전인 중세로 가 보겠습니다. 르네상스 이전의 중세는 신앙이 모든 것에다 중심이었습니다. 군대와 비교할 수 있겠네요. 명령과 복종만 존재하는 사회였습니다. 한마디로 까라면 까는 시대이었던 거죠. 중세의 명령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근데 이 하나님의 말씀은 온통 라틴어로 쓰여 있어서 성직자나 귀족 등 소수의 몇 명을 빼고는 한마디로 그 안에 뭔 소리가 쓰여 있는지 몰랐습니다. 신앙에 관한 스콜라철학이 중세 철학의 근간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김똘똘로 대변되는 범인들에는 아무 해당이 없는 이야기였을 겁입니다. 종이도 흔치 않은 데다가 양피나 종이에 인쇄기술이 없어 하나하나 필사를 해야 책을 만들 수 있었지요. 그나마도 모국어도 아닌 라틴어로 온통 써놨으니. 책이 있다 한들 김똘똘씨에게 무슨 소용이었겠습니까?
(이 필사가 수도사들의 사명 중의 하나였습니다. 팔 떨어질 때까지 쓰는 거죠. 조용히 자기들끼리만 수도원에서 돌려보고 절대 바깥세상과는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책은커녕 'A' 한번 본 적 없는 중세의 김똘똘씨는 일요일에는 교회에 갔을 겁니다. 여기에 또 다른 함정은 신부님의 설교도 라틴어(고대 로마어)로 해준다는 거죠. 답답했겠죠. 예배 시간에 해주는 설교는 뭔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몰랐으니 불쌍한 김똘똘씨는 눈치 보며 꾸벅꾸벅 졸다가 다른 사람들이 “아멘”하면 그때서야 벌떡 일어났겠죠. 하지만, 아마 평생 김똘똘씨는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고요? 엄마, 아빠, 부인, 남편, 아들, 딸, 영주님, 왕 주변 사람 모두 그것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 외에 세상은 접할 기회가 아예 없었으니까요. 그는 고단한 하루하루가 천국으로 가기 위한 고행의 길이라고 생각했고 삶의 만족도도 높았을 것입니다. 선택할 게 있어야 고민도 있는 것인데 김똘똘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으니 만족도가 높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솔직히 이 부분은 자신이 없네요. 농노의 봉기가 이때도 수시로 일어났으니까요.
파리 샤펠성당 스테인드글라스
교회에 가면 ‘하나님은 빛이시라’라는 성경 구절처럼 중세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환상적인 빛을 성령이라고 느끼며 김똘똘은 성경 속의 도마가 가졌던 불경스러운 의심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속은 편했겠죠. 뭘 알아야 의심하죠? 뭔지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성스럽고 절대적인 존재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블라디미르 성모자상, 11-12세기 (이콘화)
중세 성당에 성화들은 성상 숭배 논쟁 때문이기도 했지만, 라틴어를 모르는 평범한 김똘똘에게 성경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기 때문에 세부묘사나 작품성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충 내용만 알게 해주는 종이인형처럼 생긴 이 이콘화 정도면 That's ok 였습니다. 뭘 알아야 불평도 하지요.
(말을 하다 보니 중세의 김똘똘씨를 너무 무시한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그런데 이런 중세시대에 변화의 균열이 시작됩니다. 중세의 두 비극 십자군 전쟁과 흑사병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