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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e Aug 26. 2022

2.식상한 모나리자 거품 걷어내기 (2)

-모나리자 그림 마케팅 이야기-


 1900년대까지만 해도 모나리자는 루브르의 소장품 리스트 중에 100위 안에도 못 들 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911년 이탈리아인 페루자의 도난 사건으로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치르게 된 거죠.

물론, 프랑수와 1세는 모나리자를 구입한 후에 왕실 목욕탕에 걸어두고 목욕할 때마다 보고자 했을 만큼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었습니다. 나폴레옹 1세는 튈르리 궁전 자신의 침실에 걸어두었다고 합니다. 물론, 사람들의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루브르로 갖다 놓기는 했지만요. 이렇듯 도난 이전에도 모나리자는 소수 고위층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모나리자 도난범, 페루자

 페루자는 왜 모나리자를 훔쳤냐고 법정에서 질문을 받자 크기가 작아서 들고나오기 편해서였다고 대답했죠. 이분 정말 너무 순수한 뇌를 가지고 계신다고 해야 할지! 하하 그냥 웃을 수밖에요. 하지만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림을 감상하고 즐기는 것은 일부만을 위한 고급문화였기 때문에 루브르에서 잡부로 일했던 페루자가 모나리자에 대해서 몰랐다고 비웃을 일도 아닙니다.     

 어쨌든 이 페루자가 미술계에 끼친 대단한 영향은 모나리자를 노이즈 마케팅해 준 공로뿐만이 아닙니다. 페루자는 본인의 나라인 이탈리아에 모나리자를 가져갔고 결국 발각되어서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에 신문에 연일 모나리자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때마침 대중화된 신문도 이 사건에 한 몫을 합니다.) 하나의 작품이 이렇게 많은 사람에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죠. 전 세계 사람이 모나리자 이름을 알게 된 것이죠.

 큰일이 터지면 보통 매일 매일 관련 기사가 나가기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사건에 관해서만 기사가 나갔지만, 나중에는 모나리자의 역사, 예술성 아마 모나리자와 다빈치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기사에 실렸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나리자 박사가 되었죠.   

 덕분에 모나리자는 고위층의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대중성을 갖는 첫 작품이 되었습니다. 슈. 퍼. 스. 타 모나리자가 일반인에게도 미술의 세계를 알려주게 된 것이죠. 의도되지 않은 마케팅의 효과를 본 것입니다. 노출이 많이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친숙하게 느끼고 끌리게 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이제 사람들은 좀 더 미술을 친숙하고 매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죠.     

 간단하게 정리하면 의도와는 관계없이 페루자가 미술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1913년 이탈리아는 모나리자를 반환하기 전에 국내 순회 전을 갖게 해달라고 프랑스에 요청합니다. 이는 받아들여졌고 피렌체의 우피치 박물관을 시작으로 로마를 거쳐 밀라노로 2주간에 전시회가 이어졌다. 이틀 동안 6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왔고 모나리자를 보고 우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기 시작했죠. 기차를 타고 파리의 리옹역에 모나리자가 내렸을 때는 이미 그녀는 페루자에 품에 숨겨서 이탈리아로 갔던 모나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이탈리아와 프랑스 양국에 문화적 자존심 대결의 상징이며 다른 의미에서의 각국의 긍지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당연히 그녀가 루브르에서 재전시를 하기 시작했을 때는 수만 명의 대중이 그녀를 보기 위해서 구름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미술을 고급문화가 아니라 대중문화로 만들어 버린 거죠.     

 그녀는 이제 가는 곳마다 이슈를 몰고 다니는 슈.퍼.스.타 마돈나가 된 것입니다. 그녀의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고 이슈 거리가 된 것이죠. 오늘날의 스타와 어쩜 이렇게 똑 같은까요? 인기가 있는 만큼 비난하는 목소리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1919년 뒤샹은 모나리자의 얼굴에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리고, L, H, O, O, Q라고 적어 넣었죠. 이걸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니 엉덩이가 섹시해’이렇게 들린답니다. 당시 가장 진보적인 예술가인 뒤샹은 기존 미술에서 중시되던 원근법, 데생, 명암법 등의 고정관념을 깨트리자는 의도로 이 작품을 만든 것이었죠. 근데 엉뚱하게도 사람들은 ‘역시 모나리자가 너무 훌륭한 작품이라 뒤샹도 까는구나!’, ‘역시 모나리자는 대단해.’ 이렇게 반응해 버린 거죠. 역시 될 놈은 어떻게 해도 되는 모양입니다. 모나리자는 이 이후로도 끊임없이 유명작가들의 패러디가 양상 되고 더더욱 유명해집니다.

 그녀가 뉴욕과 도쿄에 갔을 때 도로를 마비시키고 관람 시간을 30초로 제한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만들어 가면서요.

 페루자의 도난 사건으로 인한 모나리자 마케팅은 의도된 것은 아니었지만, 모나리자 도난 사건이 없었다면 예술은 지금보다 좀 더 대중에게 멀리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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