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가 다발성골수종 진단을 받았을 때 큰딸은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 다니는 중이었고 둘째 딸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본에 가 있었다. 두 아이 모두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지나며 자기 자신과 씨름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엄마와의 대화가 많이 필요한 시기였으나 내가 아프기 전에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아프고 난 후에는 아프다는 이유로 아이들 일은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내가 친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친정엄마가 우리 아이들 소식을 좀 더 자주 듣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환자인 나를 우선 배려하며 아이들을 단도리하느라 손녀와 할머니 사이에 마음 상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환자라는 이유로 엄마의 임무를 방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게나마 철든 나는 아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기 발췌_2010년 3월 3일 수요일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본에 가 있는 둘째 예진가 우동집 면접을 보러 갔다 왔다는 이야기가 친정엄마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에미가 중병에 걸려 있는데 딸은 고작 우동집에서 서빙을 하려고 비싼 돈 들여 이국땅에 갔어야 했다는 것이 할머니로선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큰딸 예은이는 낯선 상황에서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려워서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 자신을 용납하기가 힘드니까 누군가 탓할 사람을 찾게 되고 결국 나와 남편이 표적이 되었다. 아빠는 원래 냉정한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엄마마저 자신에게 너무 관심이 없어서 오늘날 자신이 사람들 눈치를 보고 살게 된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문제는 예은이가 외할머니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데 있었다. 친정엄마는 당연히 예은이의 마음을 부정하지 않았으나 시기가 적절치 않음을 지적하셨다. 심지어 나더러 “너는 자식 복이 없다”라는 말까지 하셨다. 엄마도 자식 복이 없긴 마찬가지면서.
하지만 나는 예은이가 내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은 것을 진심으로 고맙게 여긴다. 나는 내가 환자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자기감정을 숨기고 거짓 웃음을 웃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일기 발췌_2010년 3월 5일 금요일
벨케이드 주사를 두 번째로 맞았다. 첫 번째 주사 때보다 몸이 더 깔아진다. 등이 바닥에 착 달라붙는데 잠이 오는 건 아니다. 집에 온 지 세 시간쯤 지나니 기운이 좀 난다.
<이퀼리브리엄>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감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부정적 감정이 인간의 삶에 방해물로 작용한다는 전제하에 국가원수가 약물로 국민들의 감정을 제거한다. 그는 인간이 두려움과 슬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업무 효율성이 올라갈 것이므로 막강한 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리브리아 공화국의 총사령관의 판단은 잘못되었다. 그는 온 국민에게 포지엄을 투약하여 감정 없는 인간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국민들 중에는 투약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감정을 느끼기로 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황홀해한다. 물론 두려움과 슬픔, 우울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들은 두려움이 있다 해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선택한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된다. 나는 아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약간의 외로움과 두려움도 느끼지만, 덕분에 삶이 단조롭지 않다.
일기 발췌_2010년 3월 6일 토요일
아침에 약간의 두통이 있다.
어제 주사 맞은 후 심하게 디프레스 되었었다. 간신히 기력이 났을 때 최인호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읽었다. 앞서 읽었던 『가족』 9편에 비해 훨씬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어머니가 나이 드신 후 작가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점점 자라났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는 자식들을 들볶는 것으로 죽음의 두려움에 대처하였다. 어머니가 내다 버리고 싶으나 버릴 수 없는 짐짝 같다고 느껴질 지경에 이르러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작가가 나이 든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였다. 하지만 작가가 어머니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을 나는 높이 산다.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을 인정했다는 점 때문이다. 작가는 그 대목을 쓰면서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돌아가신 분과 나머지 가족들에게 미안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진솔한 글을 썼기에 그 후의 심적 변화가 더욱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최인호의 글을 읽으며 나도 봄이 오는 것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작가는 어머니의 꾀에 넘어가 마지못해 찾아간 신륵사에서 봄의 아름다움을 마주한다. 어머니는 자연의 생동감 속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죽음을 잠시 잊고 싶었던 것이다. 기회가 되면 이화여대 교정에 가서 예쁜 꽃과 새순이 돋아나는 것을 보고 싶다.
일기 발췌_2010년 3월 7일 일요일
<천만번 사랑해>라는 드라마가 오늘 끝났다. 주인공이 암 수술을 받은 후의 결과를 바로 보여주지 않아 조마조마했지만, 주인공이 죽고 살고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와 주변 사람들의 삶의 질이라 생각했기에 결말이 궁금했다. 주인공이 자신의 아픔을 남 탓으로 돌리지 않고 모든 일을 용서하고 감사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이 서로 화해하게 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작가는 결국 주인공을 살게 함으로써 시청자의 마음을 안도하게 하고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하였다. 해피엔딩이란 좋은 것이다.
어제 방영분에서 주인공이 새엄마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내가 죽으면 아버지와 남편이 불쌍해서 어떡할지? 아버지에게는 엄마가 있지만 내 남편은 어떡하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혹 내가 완치되지 않는다 해도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쉬울 것도, 원통한 것도 없다는 생각만 했지 남은 사람들에 대해 그다지 염려하지 않았다. 친정 부모님의 가슴이 찢어질 거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남편이나 아이들은 잘 견뎌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람은 어지간한 일에도 적응하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남편은 여간해서는 나약해지는 사람이 아니다. 예솔이는 어리기 때문에 엄마를 더 빨리 잊을 것이다. 남편은 나보다 더 나은 여자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니 내가 없는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슬픔의 나락에 빠져 있진 않을 것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