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봄, 일로 만난 수현 씨의 첫인상은 ‘자연스러운’ 사람 같다는 것이었다. 주어진 일을 순리대로 해 나가는 사람. 순리대로 일을 한다는 것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차곡차곡 자신의 길을 자연스럽게 닦아 나가는 것이라 여겨졌다. 그 길에는 수많은 갈래가 있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수현 씨는 ‘사랑’과 ‘호기심’으로 도전하고 극복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녀는 음악가와 미술가의 협업 공연을 기획하면서 나를 섭외했는데, 내가 참여했던 공연 행사에 수현 씨의 가족이 출동한 것을 보고 나의 확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짐작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타인도 사랑할 줄 안다.
“사랑은 알면 알수록 어렵고 복잡한, 그래서 이성으로는 풀 수 없는, 헤겔이 말한바 ‘가장 괴이한 모순’의 형태로 존재하지만, 사랑은, 여전히, 유일하게, 모순과 부조리의 골짜기에서 신음하는 우리에게 손을 뻗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그게 우리가 사랑의 본질을 향해 거듭 물음을 던지는 이유다.”
장석주 작가의『사랑에 대하여』책날개에 쓰인 책 소개 문구이다. 그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유일한 대안은 바로 사랑.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임에는 분명하다. 사랑이 묻어나던 수현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만큼은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경아 안녕하세요. 내주신 쑥차가 참 맛있습니다.
남수현 앗, 그래요? 가실 때 조금 드릴게요.
최경아 『Pop the Egg!』프로젝트는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계란이라는 식재료로부터 시작되었어요.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계란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대화집 프로젝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인터뷰는 음식에 대한 기억, 관심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 볼까요? 수현 씨는 음식, 혹은 요리에 대한 어떤 관심을 갖고 있나요?
남수현 저희 집은 부모님이 맞벌이하셨고, 게다가 4남매라 엄마가 바쁘신 와중에 많은 양의 식사와 간식까지 혼자 챙기셔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음식들이 창의적인 경우가 많았어요.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으니 집에 있는 재료로 조금은 특이하고 특별한 요리를 해 주셨는데요. 특히 기억나는 음식은 누룽지같이 밥을 프라이팬에 쫙 편 다음에 집에 있는 온갖 재료를 넣어서 만든 밥피자예요. 라이스버거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저는 그걸 집에서 예전부터 먹은 셈이죠.
최경아 어머니께서 바쁠 때 냉장고에 있는 재료의 조합으로 어떻게든 창의적인 요리를 해 주신 거네요. 한마디로 냉장고 경영!
남수현 어릴 때 엄마가 그렇게 해 주신 음식들이 기억에 남고, 그 영향으로 저 역시 레시피에 얽매이지 않고 상황이나 재료에 따라 창의적으로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최경아 그런 특성이 수현 씨 생활에도 적용될 때가 있나요?
남수현 그런 것 같아요. 음악이 주 활동이지만, 사실 음악이라는 장르에 갇히지 않고 활동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음악가가 아닌 예술가가 되고 싶은 열망을 늘 갖고 있는데요. 공연을 위주로 하긴 하지만, 공연 기획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사실 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춤도 추고 싶고, 연기도 하고 싶고… 예술이라는 영역 안에 있는 것 중에서 제가 해보고 싶은 것은 주저하지 않고 시도하고 있어요. 사실 예전에는 ‘난 음악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해도 되나?’ 하는 생각 때문에 멈칫할 때도 있었거든요? 제 정체성에 대해 많이 고민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다양한 활동이 모여서 나라는 사람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이라는 특정 영역에 특화된 사람보다는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최경아 저도 그림 그리는 사람인데, 이런 일도 하고 있잖아요. (웃음) 예술가는 내가 내시대에 대해 표현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표현력도 풍부해지지 않을까요? 그러면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남수현 6년 전쯤, 공연하러 서울에 갔던 적이 있었는데요. 저만 멀리서 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경기도에 사는 뮤지션이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대부분의 문화 예술 행사는 서울에서 많이 이루어지니까, 당연히 서울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우리 동네에도 음악을 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꼭 서울에서만 이런 공연이 이뤄져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태어나고 자란, 지금도 살고 있는, 내가 사랑하는 도시인 이곳 수원에서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열망이 피어난 거죠.
최경아 그 일이 딱따구리 책방 탄생 배경인가요?
남수현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뮤지션이나 다양한 예술가들이 자주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 그 계기 덕분에 딱따구리 책방을 오픈할 수 있게 됐어요. 이 공간이 원래는 ‘다람쥐 연구소’라는 곳이었는데요. 그때 운영하던 친구들이 공간을 비우는 일이 많아서 저한테 잠시 이곳을 써 볼 기회를 준 적이 있어요. 그때 여러 가지 행사 기획을 해봤던 게 딱따구리 책방 오픈의 결정적인 계기였죠.
최경아 그때 어떤 기획을 했나요?
남수현 《연말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무료 공연과 와인 제공》, 《잼 데이》, 《오픈 마이크》, 《정기 공연》 같은 것을 했어요. 사실, 사람들이 많이 올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 주셨어요.
최경아 그렇게 엉뚱하게 기획한 것들이 수현 씨한테 엄청나게 재미난 일이었나 봐요.
남수현 맞아요. ‘누가 나를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내 공연을 만들어서 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공연 기획을 하게 된 시발점이 된 거죠. 그래서 지금은 공연 기획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최경아 그러면 뮤지션이 아닌, 공연 기획자로 진로를 바꿀 여지도 있을까요?
남수현 글쎄요. 현재는 음악이라는 큰 장르 안에서 성장하고 고민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단지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뮤지션이 아니라, 큰 범위에서 음악 산업 종사자로서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지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테스트해 보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뭐든지 생각나는 건 고민이나 의심하지 말고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최경아 책방 곳곳을 둘러보니, 유독 ‘사랑’에 대한 글귀가 많이 보여요. 제가 수현 씨를 객관적으로 바라봐도 그렇고, 사랑을 주고받는 일에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가정에서 사랑 많이 받고 자라셨죠?
남수현 오빠 두 명에 남동생 한 명이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죠. 유일한 딸이니까요. 어쩌다 보니 고명딸이 된 셈인데요. (웃음) 그래서 아빠가 유독 절 예뻐하시긴 했어요. 어린 제가 봐도 편애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만큼 오빠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몰라도 두 살 터울씩밖에 되지 않거든요. 근데 어릴 때는 사실 아빠가 예뻐해 주는 것보다 오빠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서 좀 속상했죠.
최경아 냉장고 경영을 물려받은 것처럼, 수현 씨가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어머니는 어떤 분이세요?
남수현 사실 제가 4남매 중 유일한 딸인 것치고는 엄마랑 그리 친밀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자라면서 본 엄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은 잘 못 하셨지만, 밖에서는 사랑을 많이 나눠 주셨어요.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도 있겠지만 주변 이웃들에게 늘 베푸셨고, 특히 사회에서 약자라고 불리는 분들을 잘 챙기셨어요. 그런 것을 보면서 저도 엄마의 그런 점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고, 은연중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최경아 저는 사랑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요. 수현 씨 어머니가 그걸 보여주시는 산증인이시네요.
남수현 예전에 성당에서 중고등부 교사를 하면서 사랑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 적이 있어요. 아마 이 생각은 자신이 바쁘고 힘듦에도 불구하고 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방법으로 사랑을 나눈 엄마를 통해 배운 것 같아요.
최경아 딱따구리 책방은 우연한 기회로 갑작스레 열게 되었잖아요. 소중한 내 공간이 생긴 셈인데, 가장 좋았던 점은 뭔가요?
남수현 만날 일이 있으면 여기서 만나면 된다는 거예요. 촬영이나 공연을 할 곳이 필요하면 여기서 하면 되고, 인터뷰나 회의, 모임 등 필요할 때마다 공간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니 좋더라고요. 가끔은 선물처럼 지인들이 저를 보러 이곳에 찾아오는 것, 손님으로 오신 분들과 인연이 생기는 것도 이 공간 덕분이고요.
최경아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다시 돌아올 집이 있어서인 것처럼, 자기만의 공간이 생기니까 돌아올 곳에 대한 안도감 같은 게 생기지 않나요? 여행 갔다 돌아올 때, ‘아 이제 집에 왔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요.
남수현 맞아요. 확실히 나를 기다려주는 곳이 있으니 안정감이 들어요. 한편 책임져야 할 공간이 있다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요.
최경아 하고 싶은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꽤 힘든 일인데, 수현 씨는 용기가 큰 사람 같아요. 음악 활동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고 계시는데, 요즘 특히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남수현 요즘은 여행을 가고 싶어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요. 새로운 곳에서 몸과 마음을 수련해 보고 싶기도 하고, 춤과 연기를 좀 제대로 배워보고도 싶어요.
최경아 천천히 다 해보면 되죠. 하다가 잘 안되더라도 분명 얻는 인사이트가 있을 테니까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계시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잘 해내고 싶은 건 그래도 음악이겠죠? 그게 수현 씨의 중심이니까.
남수현 네! 지금으로선 그래요. (웃음)
최경아 뭔가를 잘한다고 모두가 그걸 업으로 삼지는 않잖아요. 수현 씨는 스스로 생각했을 때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 것 같나요?
남수현 음… 관계 맺는 걸 잘하는 것 같아요. 사람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단점마저 장점으로 승화시켜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렇다 보니 사람을 잘 미워하지 않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과 관계가 좋기도 하고요. 장점은 물론이고, 단점마저 사랑스럽게 여기면서 그 사람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최경아 저도 수현 씨처럼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가 많은데요. 그런데도 정말 못된 사람이나 보기 싫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하지만 그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전 ‘주인공 서사’를 생각해요. 예전에 영화감독 이옥섭 씨, 배우 구교환 씨가 가수 이효리 씨와 나눈 이야기에서 나온 말인데요.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괴로워하던 배우 구교환에게 이옥섭 감독이 “그 사람을 한번 귀여워해 보라고” 한 거예요. 이옥섭 감독이 언젠가 미국 여행 중에 2층 버스에 탔는데, 냄새가 나서 돌아보니 어떤 여자분이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었대요. 순간 너무 싫었는데, 그분이 자기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보니 너무 귀엽고 예뻐 보였다면서요. 그런 마음으로 보면 미워할 수가 없다고. 내 작품의,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그 누구라도 귀엽고 예뻐 보인다고. 수현 씨나 제가 가진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관찰력을 이런 좋은 용도로만 쓰면 미워할 사람이 없겠어요. (웃음) 이런 질문을 하기엔 아직 나이가 어리시긴 하지만,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남수현 음… 그런 생각은 잘 안 해봤는데, 그냥 요 몇 년 동안 힘든 일들이 좀 있었거든요. 그 시기를 지나면서 제가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전에도 밝은 에너지는 늘 갖고 있었지만 자주 흔들리기도 했거든요. 눈치도 많이 보고요. 그런데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악에 받쳐서 화도 내고, 회복하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지금은 단단해진 것 같아요.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제게 필요한 시간이었는 생각이 들어요. 그 사건으로 인해 우연히 어릴 적 알게 모르게 받았던 상처들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걸 폭발시키고 나니 이제 좀 괜찮아졌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최경아 수현씨는 4남매 중 유일한 여자이기도 했고, 삶의 대부분을 타인에게 맞춰주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는데, 어떤 계기를 통해 내 감정을 여과 없이 폭발시키고 나서 스스로와 좀 더 친해진 것같이 느껴지네요.
남수현 네. 자랄 때는 몰랐는데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서 사회에서 활동할 때도 그러고 있더라고요. 친구와의 관계, 연인과의 관계에서도요. 그게 분명 저의 장점이겠지만, 가끔은 저 역시 누군가를 위해 맞춰주는 게 아닌, 나를 위해서만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필요했던 거죠. 물론 그걸 예술로 녹여내고 있지만요. 그렇게 한번 제 자신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드러내고 나니, 어떤 상황에도 의연해진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뿌리가 가늘어서 자주 흔들리는 나무였다면, 지금은 뿌리 깊은 튼튼한 나무가 된 것 같아요. 그 시간만큼 성숙했다고 생각해요. 제 자신도 강하게 잘 지키면서 주변을 사랑하는 마음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며 개인적인 생활도, 예술 활동도 넓혀가고 싶습니다.
2023.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