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살게 되면서 처음으로 전철을 탄 날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생각에 들떠 마음에 쏙 드는 가을재킷에 검정 백팩을 메고 전철을 타러 갔다. 출근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지만 전철을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의 전철과는 다른 두 가지 풍경이 낯설었다. 하나는 부산의 전철은 크기가 작아 마주 보는 자리의 간격이 아주 좁다는 것이다.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에게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깝다. 두 번째는 할머니들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러시아워의 붐비는 시간을 피해 외출들을 하시는 듯했다. 대부분 모르는 사이일 텐데 옆에 앉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모습이 귀엽다 생각했다.
내리는 문 근처에 손잡이를 잡고 섰다. 몇몇 빈자리가 보이긴 했어도 다음 역에서도 여지없이 할머니들이 많이 탈 것 같아 굳이 양보하느라 다시 일어설 바엔 서서 가는 편을 택했다. 전철이 흔들리며 출발한 지 몇 초나 지났을까 누군가 내 백팩을 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소매치기인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반대편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가방을 당기며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누구시지?
내가 못 알아본 할머니인가 해서 몸을 돌리며 인사라도 하려는데 할머니가 불쑥 말씀하셨다.
“마, 이리 와서 앉아라”
“네?”
“서서, 다리 아프다 아이가 괘엔찮다 괘엔찮다.”
서 있어도 괜찮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할머니의 '괘엔찮다'는 순식간에 옆 자리의 할머니들까지 합세한 '괘엔찮다' 메아리가 되었다. 머쓱해진 나는 결국 할머니들 사이에 앉아서 환승역까지 갔다.
부산에서는 유독 할머니들을 많이 만났다. 할머니의 인구비율이 높은 도시라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내가 사는 동네와 행동반경에 유독 할머니들이 많이 사셨던 것 같다. 집 근처는 아파트 사이사이로 등산로를 따라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공원은 심은 지 이십 년도 넘은 우람한 나무들로 숲이 이뤄져 있었다. 가을 날씨가 참 좋아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율이를 데리고 매일 산책을 나갔다.
공원의 벤치에는 예외 없이 할머니들이 대여섯 명씩 앉아계셨다. 어느 벤치 옆에는 누군가 편안한 소파를 가져다 두기도 해서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어있었다.
한두 발짝 걸을 줄 알게 된 율이는 더 이상 안기지 않으려 했다. 스스로 걸어서 낙엽도 밟고 솔방울도 만지는 모습이 귀여워 마음대로 걸어가게 내버려 두었다. 아장아장 걷는 율이는 반은 넘어져 보도블록 사이를 기어 다녔다. 바지에는 낙엽이 붙고 손바닥은 흙투성이 었다.
“율아, 이제 엄마한테 안길까? 지지~~ 바닥을 손으로 쓸면 안 돼~~”
아이가 지저분해지는 게 싫었던 나는 말리고 만류했지만 이미 율이는 온 공원 바닥을 쓸고 다니는 중이었다. 율이를 안으면 떼를 쓰고 울 게 뻔했다. 울리지 않으려고 아무리 설득해도 아이는 제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할 뿐이었다.
“괘엔찮다, 괘엔찮다. 하고 싶은 거 하고 놀게 놔둬라~”
어디서 할머니 한 분의 외침이 들려왔다. 근처 벤치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몇 분이 제 손주 보듯 두 눈 가득 사랑스러운 하트를 빛내며 아이의 장난을 지켜보고 계셨다. 아이 옆에서 발 동동거리는 나에게 그만 조급해하라 하신 말이었다. 아이가 온통 지저분해지며 쉬이 감기라도 걸릴까 염려 섞인 곤란함을 겪던 나는 잠시 머쓱해졌다.
그래 , 괜찮지 뭐. 일부러 촉감놀이도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살아있는 촉감 놀이잖아.
부산 할머니들의 ‘괘엔찮다’는 그 후로도 수도 없이 듣게 되었다. ‘밥 먹었나?’란 인사만큼이나. 이제 막 갓난 아이를 안은 엄마에게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이었으며, 어떤 날은 잘 하고 있다는 겪려이기도 했다. 율이를 안고 재래시장이나 공원, 동네 병원이 있는 큰 사거리로 나갈 때면 마치 온 동네가 율이를 키우는 기분이었다. 비뚤 하게 생각하면 참견이었겠지만 왜 인지 모를 정겨움이 있었다. 좋은 마음이 느껴졌다.
아이가 열이 펄펄 끓어 밤을 새우던 날. 물수건으로 아이를 닦이고 다독이며 나도 모르게 되뇌던 말이다.
괘엔찮다. 괘엔찮다.
아직은 아이의 감기 앞에서도 벌벌 떠는 엄마에게 용기를 주었던 중얼거림이다.
튼튼하게 제 몫의 성장을 해내는 부산 아이를 키우는 부산 엄마의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