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전에 출근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내 지갑 집에 두고 왔나 봐. 주유소 왔는데 카드가 없네. 지갑 좀 찾아봐~”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소식에 ‘내 언젠간 이럴 줄 알았지’ 생각했다. 평소 남편의 덜렁 거림 수준이라면 벌써 여러 번을 잃어버렸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은 자신의 물건을 한 번에 찾은 적이 거의 없다. 외출을 할 때면 매번 ‘내 차 키 어디 있어?’, ‘내 핸드폰 못 봤어?’ 같은 질문을 한다. 자동차 열쇠와 지갑은 화장대 위에 두든지 현관 신발장 위에 두면 바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늘 헤매는 수고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얘기했지만 어디다 두었는지 까먹는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기어코 오늘처럼 지갑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푸념은 뒤로 미루고 일단 지갑을 찾아야 했다. 남편이 지갑을 두기로 한 화장대 위를 봤다. 지갑은 없었다. 바닥에 떨어졌나 싶어 침대 밑, 방 구석 구석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바지 주머니에 있을 것이다. 어제 입고 벗어놓은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지갑은 만져지지 않았다. 이후 거실 소파와 식탁, 남편이 운동화를 꺼냈을 신발장까지 행동의 동선을 고려하며 샅샅이 뒤졌다. 이쯤 하면 찾았어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는 없는 모양이다.
밖에서 잃어버렸다면 피곤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군가 주워서 돌려주지 않는다면 지갑 속의 카드를 모두 사용 정지해야 한다. 신용카드의 카드사마다 일일이 전화를 해야 할 것이고, 신분증과 신용카드들은 모두 다시 발급받아야 한다. 관공서며 은행을 일일이 찾아가야 하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이 모든 불편함을 겪지 않으려면 방법은 단 하나 지갑을 찾아야만 한다.
다시 힘을 내 이번에는 집 안의 서랍이라는 서랍은 모두 열어보기 시작했다. 지갑을 찾을 확률이 거의 없는 싱크대 수납장 하나까지 일일이 열어보았다. 모두 헛수고였다. 지갑을 찾느라 몇 시간 동안 허리를 숙이고 앉았다 일어났다 했더니 피로가 확 몰려왔다. 남편에게 집에는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려 전화기를 들며 거실 소파에 푹 기대앉았다.
그때 잠깐, 무심결에 눈을 돌린 냉장고 위에 낯익은 초록색 가죽의 귀퉁이가 보였다. ‘설마...’
남편의 지갑이었다. 이사를 가기 전까지 켜켜이 앉은 먼지를 닦아내려 손을 올리지 않는 이상은 손이 닿을 일이 없는 곳이다. 지갑이 제 발로 걸어 올라가지 않았다면 분명 남편이 올려두었을 것이다. 대체 왜, 냉장고 위였는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남편이 언제나 덜렁대는 것은 아니다. 여행 계획 짜는 것을 보면 어찌나 꼼꼼한지 놀라서 입이 쩍 벌어지곤 한다. 액셀 표에 여행 스케줄이 10분 단위로 표시되어 있다. 스케줄에 따른 이동 거리, 시간, 교통수단, 요금, 주소, 연락처까지 정확하다. 액셀표만 보면 막힘없는 여행을 할 수 있다. 출발, 도착 비행기와 머물 숙소가 여행 계획의 전부인 나와는 정 반대의 스타일이다. 내게 여행의 즐거움이 의외성에 있다면 남편은 그려 놓은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것에 있다는 걸 함께 여행을 하며 알게 되었다. 초반에는 남편의 꼼꼼함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왜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정리하냐 물어본 적이 있다.
“여행지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깝거든.”
우리 남편에게는 ‘꼼꼼 보존의 법칙’ 같은 게 적용되는 것이 틀림없다. 여행지에서 발휘하는 꼼꼼함을 채우기 위해 일상생활에서는 약간의 구멍이 발생하는 것이겠지. 약간의 구멍들이 오늘처럼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지갑을 발견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너무나 어이없는 곳에서 지갑을 발견한 덕분에 나는 숨을 돌리며 남편의 행동을 거슬러 추리를 해보았다. 어제저녁 집에 온 남편은 주방에서 저녁 준비하는 나를 발견했겠지. 집에 오는 길에 있었던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하느라 주방으로 왔을 것이고. 평소 습관대로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고 했는데 마침 목이 말랐겠지. 한 손에 컵을 들고 정수기 버튼을 누르려는데 지갑 든 손이 불편했겠지. 어디든 지갑을 내려놓는다는 게 옆에 있던 냉장고 위였을 테고. 물 한 잔 마시며 지갑은 까맣게 잊었겠지.
추리는 완벽했다. 한때 추리소설 좋아했던 이력이 결혼생활에 쓰일 날이 오다니. 덜렁대는 습관을 가진 남편의 아내로 살기 위해서는 추리력의 덕목이 필요하단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웃음 섞인 한숨을 한번 쉬었다. 오늘보다 더 스펙터클한 추리력을 발휘할 날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남편에게 신나게 전화를 걸었다.
“지갑 찾았어. 하마터면 이년 후에 우리 이사 갈 때나 찾을 뻔했지 뭐야~”